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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아픈 역사 뒤로하고 거듭난 '생태동물원'

■ 한국 동물원 100주년<br>단순 관람 기능에서 탈피, 자연보다 안전한 동물원으로<br>희귀종 외래동물 등 자체 양육 기술 개발도


1909년 11월 1일 한국 최초의 동물원이 문을 열었다. 세계적으로는 36번째, 동양에서는 7번째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동물원은 치욕의 역사로 시작됐다. 일제가 조선의 왕궁인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궁궐을 헐어 동물원과 식물원을 꾸민 탓이다. 80년대 창경원은 창경궁으로 복원되고 현 위치인 경기도 과천에 서울대공원이 조성돼 동물들이 새 둥지를 틀면서 한국 동물원의 역사가 본격 시작됐다. 어찌됐건 치욕스러운 기억도 역사인 만큼 오는 11월1일은 한국 동물원이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한국동물원은 이제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작업에 나서면서 열악했던 동물사 환경도, 관람 환경도 개선됐다. 서울동물원이 그리는 미래는 생태동물원이다. 단순한 전시 기능에서 더 나아가 자연에 가까운, 자연보다 안전한 동물원을 꾸밈으로써 멸종 위기 동물의 종 보존에 앞장서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지향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변화한다면 동물들의 야생성은 부활되고 번식은 증가하는등 동물 복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치욕의 역사로 시작된 100년사 개원 초기에는 동물이 없어 직접 포획하거나 기증받은 동물, 일본 동물원에서 들여온 동물들로 우리를 꾸몄다. 창경원은 이내 서울 사람들의 나들이 장소로 각광받았다. 100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첫 동물원은 수난도 많았다. 첫 위기는 1945년 태평양전쟁 때다.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동물들이 집단 독살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일제시대부터 창경원에 근무했던 고 박영달 사육사(당시 사육사 보조)의 전언에 따르면 "1945년 7월 이왕직(일제 시대 조선 왕실 일을 맡아보던 관청 회계과장 사토는 미군의 폭격으로 동물이 탈출할 경우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며 일본에서 하달된 명에 따라 맹수류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 배부된 극약을 사료에 넣어 코끼리, 사자, 호랑이, 곰, 뱀, 악어, 독수리 등에게 먹인 후 하루에만 21종 38마리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 동물을 가둬두었던 우리의 최창살은 전쟁 무기로 쓰였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위기는 한국전쟁 탓이었다. 전쟁 초기에는 사육사들이 동물들을 위해 동물원에 남아 있었지만 1ㆍ4후퇴 때는 도리 없이 피난을 떠나게 됐다. 사육사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목숨이 붙어 있는 동물은 단 한마리도 없었다고 한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낙타, 사슴, 얼룩말은 도살이 된 듯 머리통만 남아있었고 여우나 너구리, 오소리, 삵 등이 굴과 돌 틈에 끼어 죽어 있었다. " '한국 동물원 80년사'(오창영, 1993)의 기록이다. 광복후 일본인 관계자들이 모두 한국을 떠나고 전쟁을 겪으면서 관련 서류가 유실되면서 한국 동물원의 역사는 80년대까지도 이렇다할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오창영(81) 전 서울대공원 동물부장(지금의 동물원장)은 입사연도인 56년부터 수십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료를 수집해왔다. 과거 창경원에 재직했던 일본인으로부터 동물원 팸플릿을 전해 받고 1909년 11월1일이 개원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그였다. 100년만에 한국의 동물원은 17개(수족관 포함)로 늘어났다. 72종 360여 마리에 불과했던 영세한 규모로 시작된 창경원은 이제 서울동물원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320종, 2,476마리의 동물을 보유한 수준급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 ◇생태동물원 지향 세상에는 동물원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야생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을 굳이 가둬 그들의 삶을 방해할 이유가 있냐는 주장이다. 하지만 동물원 측은 "동물원 무용론은 동물원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해서 보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축한다. 최근 동물원학에서 동물원의 기능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전시, 교육, 관리, 복지 등 4가지다. 과거에는 전시기능이 가장 강조됐다면 지금은 생태교육을 맡는 것은 물론 건강 및 번식, 양육 등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주고 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 됐다. 그래서 최근 떠오르는 것이 '생태동물원론'이다. 동물들의 서식지 환경과 비슷한 여건을 조성해 자연보존의 가치를 알리고 멸종위기 동물들을 보존, 번식시키는 데까지 앞장서는 동물원을 말한다. 먹이나 놀이, 다른 종 동물들과의 관계를 다양화해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상황에 반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동물행동 풍부화'가 생태동물원의 기본 요건이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동물원에 가득했던 철창살은 이미 철거됐거나 철거중이다. 대신 동물 우리에는 동물 서식지 환경에 맞는 쉼터가 조성돼 있고 먹이도 바닥에 뿌려주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사냥하듯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동물원의 바바리양들은 매년 한 차례 뼈아픈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아프리카 산악지대에서 돌산을 타며 사는 바바리양은 매년 자연적으로 두꺼워진 발굽이 달아 없어지게 돼 있는데 동물원의 시멘트 바닥에선 발굽이 계속 두꺼워지기만 해 일부러 베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내에 인공 돌산을 만들어 발굽이 자연적으로 깎여 나가게 됐다. 지난 2000년 서울동물원에 온 갈라파고스 코끼리 거북이의 경우 2마리가 함께 들어왔다가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시름시름 앓게 됐다. 사육사들이 넓은 방사장을 만들고 풀장을 설치한 후 활동성이 강한 붉은코코아티 가족과 함께 합사시켰더니 죽어가던 거북이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자 번식률도 높아졌다. 여우사에 흙언덕을 파서 여우굴을 만들어준 결과 올 5월에는 69년 이래 처음으로 한국토종여우 3마리를 자연번식하는데 성공했다. 숲처럼 꾸며놓은 큰물새장이 생긴 후 서울대공원 개원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2세 번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도 2005년과 2006년 각각 5마리, 6마리씩 새끼를 낳았다. 천연기념물 199호로 마리당 1억원에 달하는 홍부리 황새는 지난해 처음 자연부화에 성공하는 경사도 났다. ◇세계로 가는 한국 동물원 종 보존을 위해 동물원이 해야 할 필수적인 역할은 해외 동물원과의 교류다. 정보 교류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 동물원의 높은 수준을 세계에 알려야만 다양한 동물, 특히 희귀 동물들을 구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동물 구입은 교환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희귀종을 번식하고 또 이를 세계에 알리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희소한 동물을 보내야 희소한 동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세계의 법칙이다. 2007년 서울대공원은 23년동안 수입에만 의존했던 동물을 역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공원측은 자체 양육 기술을 개발해 외래종 동물인 '히말라야 타알'의 번식에 성공, 새로 태어난 10마리를 요르단에 역수출했다. 전세계에 500마리가 채 안 되며 마리당 20억원을 호가하는 로랜드 고릴라, 1억원에 달하는 흰손기번원숭이와 홍부리황새 등 멸종위기동물들도 서울대공원의 국제적 명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동물들의 혈통관리를 위해서는 근친 배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강형욱 서울대공원 홍보팀장은 "국내에서는 근친을 배제한 종 번식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에서 동물을 확보해 번식을 늘려야 한다"며 "올해 동남아동물원협회(SEAZA)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한 사례처럼 다양한 국제 교류를 통해 한국 동물원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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