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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남자를 알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는 많은 이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윤제균(42ㆍ사진)에게는 한줄기 빛이 됐다. 광고 회사에 다니던'윤대리'를 '1,000만 감독'으로 만든 인생 역전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생긴 그의 삶의 모토는 '새옹지마'.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고 불가능에 도전해 어엿하게 성공했다. "96년에 LG애드에 입사했는데 98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에서 한 달간 강제적으로 무급휴가를 줬어요. 남들은 한 달의 휴가를 해외 여행을 가고 쉬는 데 썼지만 전 그럴 여유가 없어서 시나리오를 썼죠. 그 때 썼던 시나리오 '신혼여행'이 태창영화사의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습니다. " 우연히 당선된 시나리오로 영화판에 들어와 2001년 '두사부일체'로 감독 데뷔한 지 10년이 된 지금 윤 감독은 충무로에서 '윤제균 사단'을 형성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2009년 하지원을 비롯해 설경구ㆍ박중훈ㆍ엄정화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을 총출동시킨 영화 '해운대'로 1,139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그는 봉준호-강제규-강우석-이준익 감독에 이어 국내에서 다섯번째로'1,000만 감독'대열에 합류했다. '해운대'의 상업적 성공은 윤 감독이 이후 상상력과 추진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해준 발판이 됐다. 이 때 함께한 배우들은 이후 JK필름의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윤제균 사단'으로 불린다. 그러나 대다수 성공신화가 그러하듯 그 역시 1,000만 감독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맛봤다. 데뷔작'두사부일체'는 전국 35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2000년대 초반을 휩쓴 '조폭 코미디'의 효시가 됐다. 이어 2002년 임창정ㆍ하지원 주연의 섹시 코미디 '색즉시공' 역시 40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윤 감독의 승승장구 행보는 이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기세를 몰아 만든 '낭만자객(2003)'은 흥행이나 비평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많은 이들은 윤 감독에게 '재기불능'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렸다. 그는 당시 상황을"밑바닥을 쳤다"고 표현했다. 그 후 몇년동안 여러 편을 시도했지만 자신감을 잃고 번번이 엎어졌다. 그러다 그를 믿어준 사람들과 함께 뭉쳐 재기에 나선 영화가 임창정ㆍ하지원 주연의'1번가의 기적(2007)'이다. 훗날 '해운대'에서 드러나는 윤 감독 특유의'감동 코미디'는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려웠던 시기에 자신을 믿고 따라준 배우 하지원을 신뢰하게 돼 '해운대'에 이어 신작'7광구'에서도 함께 일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해운대'로 인생 역전의 홈런을 날렸지만 흥행의 달콤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곧바로 새 작품의 기획ㆍ개발에 들어갔다. JK필름은 지난 해 '하모니'와'내깡패 같은 애인'을 내놓았다. 두 작품 다 손익분기점이 훌쩍 넘는 흥행을 기록했고 특히 박중훈ㆍ정유미 주연의'내 깡패같은 애인'은 그동안 JK필름의 작품이 목말라하던 평단의 호평까지 이끌어냈다. 놀라운 것은 두 작품은 모두 신인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신인 감독을 찾아내는 윤 감독의 선구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하모니'는 '해운대' 조감독이었던 강대규 감독을 데뷔시킨 작품이고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제작사 몇 군데를 돌았지만 촬영에 못 들어가고 있던 김광식 감독의 작품이었어요. 영화계의 숙제 중 하나가 후진 양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작은 영화사나 신생 영화사가 하기 쉽진 않지요. 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 (후진양성은) 의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JK필름은 지난해부터 '두사부일체'이후 10년간 함께 일해왔던 CJ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을 하기로 계약하고 기획 개발비를 지원받고 있다. 이는 그동안 영화 제작사들이 수년 동안 기획해놓은 작품에 대기업이 돈을 '베팅'하는 차원의 투자가 아니라 시작부터 함께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기약 없이 투자해온 기획ㆍ개발비에 대한 부담을 덜수 있으니 윈윈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즘 충무로에서 대기업 투자사의 입김 때문에 영화계가 획일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윤 감독의 견해는 좀 달랐다."지난해 개봉한 영화 '하모니'를 보세요. 여자들이 주인공인데다 교도소가 배경이죠. CJ가 처음부터 OK 했을까요? 투자자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작사와 투자사 사이에 설득과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가 충무로에서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월급쟁이' 경력도 한몫 했다. 구멍가게 같은 충무로 관행에서 벗어나 철저한 대기업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영수증을 다 투명하게 오픈했고 투자사에서 촬영장에 보내는 현장 관리사 격인'PS(프로젝트 수퍼바이저)'를 배척하는 대신 함께 일했다. "현재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는 신뢰 상실 탓입니다. 투자자라고 늘 갑이라는 법 없고 스타 감독됐다고 계속 갈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지 못하죠. 전 월급쟁이도 해보고 큰 실패도 해봐서 어떤 땐 갑이 되고 또 때론 을이 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투자를 해주면 고맙게 여기고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 JK필름은 투자사의 신뢰에 힘입어 올해 1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네 편이나 제작한다. 신작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품은 3D 입체영화 '7광구'.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했으며 순 제작비만 90억원이 투입됐다. 본격적인 3D 영화 제작에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그는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난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맡기는 게 투자자나 관객을 위해 맞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액션 블록버스터'퀵'과 이명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미스터 K'도 올해 개봉을 준비 중이다. 그가 직접 메가폰을 잡는 차기작으로는 어드벤쳐 영화 '템플스테이'를 낙점했다. 총 제작비 400~500억원 규모를 예상하는 한ㆍ미 합작 영화다. '해운대'로 상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성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남아 있다. 그는 "예전에는 영화를 만드는 첫번째 기준이 흥행이었지만 이젠 완성도로 바뀌었다"며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의 휴대폰, TV가 세계 1위가 될 거라고 누구도 생각 못했습니다. 한국영화도 이런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수준 높은 인력을 활용해 5분의 1 정도의 제작비로 할리우드와 가장 근접한 영화를 만드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거든요. " 한국의 '아바타'를 내놓겠다는 그의 꿈이 실현돼 그가 한국 영화 역사의 새로운 또 한 페이지를 쓰게 될 지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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