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은행 부실을 견디다 못한 스페인이 결국 구제금융으로 손을 뻗쳤다.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과 긴급 전화회의를 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은행 분야에 필요한 구제금융을 유로존 국가들에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로존 재무장관들도 이날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는 최대 1,000억유로(약 146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유로존에서 그리스ㆍ아일랜드ㆍ포르투갈에 이어 4번째로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됐다. 스페인 경제는 유로존 4위로 이들 4개국 중 단연 최대 규모다.
스페인 정부는 민간 컨설팅업체에 의뢰한 자국 은행권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나오는 오는 21일 이후 구체적인 금액 및 시기 등을 정해 구제금융을 공식적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구제금융은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나 유로안정화기구(ESM)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스페인은행지원기금(FROB)이 받아 은행들에 배분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앞서 그리스 등에 대한 구제금융 조건으로 재정긴축을 비롯한 혹독한 개혁조치를 요구했던 것과 달리 스페인에는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금지원을 받는 은행 부문에 대해서만 국제통화기금(IMF)이 개혁안 이행 여부를 감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외부 도움이 필요 없다며 고집을 피우던 스페인이 구제금융 신청에 나서기로 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덜게 된 국제 금융시장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전문가들도 이번 구제금융으로 스페인이 은행권의 추가 부실을 막아 당장 발등의 불은 끌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스페인 은행 부실을 해소하는 데 유로존이 제공하기로 한 1,000억유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유로존 위기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은 지난 2007년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은행권의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증가하면서 국가재정을 압박해왔다. 특히 올 3월 스페인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가 18년 만에 최대인 1,480억유로에 달하자 국제사회에서는 더 이상의 위기 확산을 방지하려면 스페인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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