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무력시위=미군은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인근 발트해 국가의 공중순찰을 위해 F-15C전투기 6대를 리투아니아로 보냈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도 이날 의회 청문회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전투기들이 현지에 착륙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를 확인했다. 미군은 이와 별도로 폴란드에도 F-16전투기 12대를 파견하기로 했으며 미 해군의 핵추진 미사일 구축함 트럭스턴도 그리스에서 흑해로 이동하고 있다. 해군은 이날 루마니아·불가리아 해군과의 합동훈련이 목적이라고 밝혔으나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헤이글 장관은 전날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등 군사적 행동에 맞서 유럽 국가들의 방어를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서 러시아군도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동쪽으로 450㎞ 떨어진 카푸스틴야르에서 방공훈련을 시작했다고 리아노보스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러시아 측은 정기훈련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한달 동안 계속될 이번 훈련은 참여병력 3,500명에 S-300 방공 미사일 등 1,000여종의 군사장비들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레그 코체트코프 러시아 서부군구 대변인은 "북해함대의 연안경비부대를 포함한 서부군구의 모든 방공부대들이 빠짐없이 참여하는 훈련은 사상 처음이며 서부군구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미, 러시아 비자 제한조치=이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 시간가량 통화했지만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대처가 우크라이나 주권과 영토 통합을 해치고 있다"며 "러시아군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부와 직접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대처는 국제법을 지킨 적절한 대응이었다며 "불법 집권한 우크라이나의 현정부가 친러 성향인 동남부와 크림반도에 독재를 휘둘러 구원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이날 러시아의 비자 제한조치 실시에 이어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크림자치공화국의 주민투표가 국제법 위반이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분할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치단결하고 있다"며 외교적 해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사태해결 방안을 논의했으나 의견접근에는 실패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크림자치공화국의 결정을 러시아의 압력 탓이라고 비난했으며 최대 야당인 조국당은 국가안보법 개정을 통해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강경 분위기로 돌아선 EU=EU도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병합 주민투표 결정 이후 제재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EU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 후 러시아와의 비자 면제협상을 중단하고 경협 대화도 중단하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EU 정상들은 러시아가 즉각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자산동결·여행금지 등 추가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강경대응을 주장하는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의 입장이 반영돼 제재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생각보다 더 강경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밝혔다.
한편 크림자치공화국 의회의 주민투표 결정으로 크림반도 내에서도 긴장이 커지고 있다. WSJ는 "크림반도 내에서 반러시아 성향 TV 방송이 끊겼고 러시아군 주둔지인 세바스토폴에서는 러시아군과 친러 자경단이 우크라이나 해군본부 입구를 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맞서는 반러 성향 주민들도 움직이고 있는데 수도 심페로폴에서는 이날 우크라이나계 여성 2명이 러시아군의 점령을 규탄하는 노출시위로 연행됐다. 또 크림반도 내 소수민족인 타타르계 주민들은 7일 주민투표 보이콧을 결의했다. 이들은 옛소련 시절 강제이주 정책으로 크림반도에 정착한 탓에 반러시아 정서가 강해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또 다른 내부 분쟁의 가능성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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