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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팀 플레이어

최태지 정동극장장

[로터리] 팀 플레이어 최태지 정동극장장 최태지 정동극장장 며칠 전 발레리나 강수진이 주역으로 출연한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의 ‘오네긴’을 관람했다. 언젠가 그녀의 일그러진 발이 TV에 공개돼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녀는 예의 고목나무 같은 발을 토슈즈 속에 숨기고 강철나비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강수진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7년이었다. 당시 국립발레단장이었던 필자가 그를 ‘노트르담의 꼽추’의 ‘에스메랄다’ 역으로 캐스팅하면서 함께 작업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연습실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단원의 주목을 끌었다. 프로답게 자신을 관리하는 강수진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가 홀로 독야청청한 소나무 같은 사람이 아니라 팀 플레이어였다는 사실이다. 강수진은 세계적인 로잔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다. 그런 그도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에서 무려 7년이나 군무 생활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주역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그는 혼자만의 연습을 한 게 아니었다. 강수진은 32명 군무의 일원이 돼 옆도 뒤도 보면서 자신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을 다독이고 그들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일종의 리더십 훈련을 한 것이다.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나는 강수진의 그런 면을 느낄 수 있었다. 발레하면 사람들은 강수진처럼 발이 부르트도록 혼자 피나게 연습해 최고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무대 맨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 무용수에게는 물론 최고의 기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훌륭한 발레리나의 조건을 묻는다면 나는 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발레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예술이 아니라 수십 명의 무용수와 미술ㆍ음악ㆍ조명ㆍ의상 등 각 분야별 스태프가 함께 뭉쳐 만들어가는 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하나의 팀원으로서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더 어렵다. 옆 사람으로부터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은 기본이다. 무엇보다 그 사람을 알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공하는 발레리나는 기량만 뛰어난 게 아니라 그런 인덕이 있어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 줄 안다. 스스로 팀원이 될 줄 아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일등이었다’라는 것은 경력의 한 줄에 불과하다. 주역 무용수가 32명 군무 앞에 설 때는 그들이 자신을 받쳐줄 수 있게 이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이 최고요, 스타라는 의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수진이 춤을 출 때 빛나는 이유는 그에게 스스로 팀원이 돼 동료들을 이끌어가는 겸손한 인성과 리더십이 있기 때문이다. ‘삼진을 당하는 건 괜찮지만 개인 플레이는 안됩니다.’ 200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현대 유니콘스 김재박 감독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버리고 팀 플레이어가 돼 행동하는 것이 어디 발레의 세계에서만 필요한 마음가짐이겠는가. 입력시간 : 2004-11-07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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