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속도를 강조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6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장차관을 모아놓고 "더 집중하고 속도감 있게 일할 것"을 강조했고 29일 열린 경제정책점검회의에서는 "속도감 있게 정성과 혼신의 힘"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모든 부처도 주요 정책을 100일 이내에 마무리하자며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 속도전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 정부에 못지 않을 수준이다.
그러나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그동안 우리는 속도전의 폐해를 수없이 경험했다. 김대중 정부의 무리한 벤처정책은 결국 수많은 투자자와 창업자들에게 피눈물을 안겨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급한 개혁은 탄핵과 정국혼란을 불러왔다. 불과 3년 만에 완성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22조원의 혈세만 버린 채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모두 의욕에 넘쳐 과속했기에 벌어진 사단들이었다.
박 대통령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정부조직법 지각통과와 인사참사로 취임 이후 무려 두 달 가까이 행정부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으니 조급할 만도 하다. 하지만 속도를 강조하다 보면 설익은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이래서는 대통령의 국정 비전인 국민행복시대도 오기 어렵다.
속도전은 성과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일방통행 전략이다. '나를 따르라'는 구호로는 내실 있는 정책을 담보하지 못한다. 부작용을 줄이고 정책효율을 높이려면 국민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지, 파급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속도를 내실로 바꾸고 국민과 소통할 때 비로소 창조경제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 창조는 속도만 높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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