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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4류정치, 2류기업' 그후 12년
입력2007-11-21 17:46:10
수정
2007.11.21 17:46:10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 지난 95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베이징 주재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권ㆍ정부ㆍ기업이 모두 잘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곁들인 말이었다.
청와대와 정치권이 발끈하면서 삼성은 발언 배경과 진의를 해명하느라 홍역을 치렀지만 이 발언은 그 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명언’이 됐다. 그로부터 12년,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는 세월이 지났다. 우리 정치와 행정, 기업은 어떻게 변하고 어디쯤 와 있을까.
초일류로 도약한 기업 수두룩한데
먼저 기업을 보자. 외환위기 등 시련과 곡절도 많았지만 체질은 튼튼해졌다. 덩치가 커졌고 경쟁력도 강화됐다. 순이익 1조원이 넘는 기업이 당시에는 전무했지만 지금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조선산업은 세계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세계 1~5위가 모두 국내 업체다. 반도체와 LCD를 비롯해 정보기술(IT) 산업은 글로벌 무대의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철강 역시 첨단 친환경 공법 개발 등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뽐내고 있다. 변방의 그저 그런 업체들 취급을 받던 자동차도 세계시장의 중심에 빠르게 진입 중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이미 세계 1류가 된 기업이 수두룩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게 있다. 경영 투명성이 문제다.
여러 대기업 총수들이 분식회계ㆍ비자금 등으로 옥중생활을 했다. 그동안 개선됐다지만 최근 불거진 삼성 비자금과 로비의혹 논란은 이런 문제가 여전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기업들을 1류라고 선뜻 말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렇다 해도 기업의 비약적 성장을 보면 2류에서 벗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굳이 평가하자면 1.5류쯤이라고 할까.
관료와 행정은 3류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정부라는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우리 정부의 몸집은 점점 커져가지만 행정 서비스 수준은 제자리다.
규제는 여전하고 국제적 평가에서 공공 부문의 경쟁력은 다른 부문보다 처져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비서관, 국세청장, 국가보훈처 차장 비리 등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 관료들의 도덕성도 나아졌다고 하기 어렵다.
범죄자가 대통령 낙점하는 후진정치
정치는 더욱 가관이어서 수준을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대통령선거 양상을 보면 그렇게 후진적일 수 없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돈 선거, 정당 문패를 수없이 바꿔다는 잔재주 행태 등은 그렇다 치자. 가장 해괴한 노릇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정말 하찮은 사람들에 의해 낙점(?)된다는 것이다.
5년 전에는 김대업씨가 그랬고 이번에는 김경준이라는 사람이 ‘킹 메이커’의 칼자루를 잡았다. 후보도, 언론도, 국민도 모두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다. 범여권은 그의 발언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진실이야 어쨌든 처신을 잘못한, 그래서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이명박 후보 측은 김씨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민란수준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회창씨의 뒤늦은 출마도 김씨가 입을 열고 난 후의 상황반전을 예상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 후보 지지에 소극적 입장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사기범 한 사람으로 인해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원리가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고 정책대결도 허울 좋은 구호로 전락한 것이다.
정치 후진성의 또 다른 사례는 선거에 검찰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걸핏하면 검찰에 고발부터 하고 본다. 검찰은 곤혹스럽게 만들고 중립성을 해치도록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제대로 된 나라치고 검찰에 의존해 선거를 치르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정치 후진국일수록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우리 기업과 경제가 아직 1류가 되지 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런 한심하고 어이없는 현실에서 살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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