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당 대표 취임 이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만 26번 외치고 ‘협치’는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전날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악수하며 협치와 대화 복원을 다짐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정 대표는 이날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다”라며 “이번에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맹공했다. 당내 강경 지지층을 의식해 야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이다. 이에 대해 장 대표는 “거대 여당이 먼저 양보하고 손을 내밀 때 협치가 가능하다”면서 “제1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회동에서 “여당이 가진 것이 많으니 더 많이 양보했으면 좋겠다”며 여야 협치를 당부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야당이 ‘영구 집권 설계도’라고 반발하는 검찰·언론·사법 등 3대 개혁의 전광석화 같은 마무리를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 법관 평가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등은 대법원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이 침해되고 사법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청 폐지는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을 약화시키고 수사권의 권력 종속을 심화시킬 소지가 크다. 정치인 등이 언론을 대상으로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감시 기능 위축과 국민의 알권리 침해가 우려된다.
이날 정 대표가 속도전을 공언한 검찰·사법·언론 관련 입법들은 국민의 일상과 직결되지만 국민의 반대가 크다. 야당 등과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국민적 합의 아래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 그보다는 청년 고용, 경기 활성화 등 민생 대책과 노란봉투법 등에 대한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 민주당이 지금처럼 야당을 배제한 채 극한 대립을 벌인다면 경제·안보 위기 극복을 위해 어렵사리 합의한 민생경제협의체도 성과를 내기 힘들 수 있고, 그 부담은 정부와 여당에 오롯이 돌아갈 게 뻔하다. 여당과 정 대표는 ‘적폐 청산’만 외치다가 민심을 잃고 정권도 뺏긴 문재인 정부의 패착을 곱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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