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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재정위기 이후 미국ㆍ영국ㆍ유럽연합(EU)ㆍ일본 등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추진해온 재정긴축은 총수요를 위축하고 경기를 침체시켰다. 선진국들은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소위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를 고수하고 있다. 긴축을 통한 재정건전성 확보와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이라고 하겠다. 선진국들은 돈을 찍어내서 자국통화 가치를 떨어트리고 대외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수출을 확대하고 경기침체를 벗어나려는 것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벤 버냉키 의장은 미국의 실업 문제가 충분히 개선될 때까지 추가적 양적완화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내각도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벗어날 때까지 무제한 통화증발을 지속할 방침이다. 다시 말해서 자국의 경기침체를 다른 나라에 떠넘기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평가절하하는 정책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지난해 9월 이후 원화는 미 달러와 엔화에 대해 가파르게 올랐다. 특히 1ㆍ4분기 중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는 14.4%나 급등했다.
엔ㆍ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에 접근하면서 엔저가 우리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정부는 엔저 저지에 나섰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반면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국제사회의 추인을 받았다. 따라서 엔화 약세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절했다간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수출금융 등도 국제무역 규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외환보고서를 통해서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을 자제하도록 압력을 넣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래저래 정부는 눈치만 보고 이렇다 할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엔저 대책에도 별것이 없었다. 정부는 수출 중소기업에 대해 기존 대출보다 유리한 금리로 약 1000억원가량 대출을 확대해주기로 했다. 이런 조치는 엔저에 따른 기업의 수익성 악화에 비하면 너무 미미해서 근본 대책이라고 할 수 없다.
세계 무역에서 외환시장 개입 등 인위적인 환율 조작으로 자국의 대외경쟁력을 높이고 상대국에 피해를 주는 정책은 반칙이다. 이것은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인근궁핍화)' 정책이며 환율전쟁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환율전쟁에 적극 대응해서 선진국 양적완화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선진국이 재정긴축과 확장통화 정책을 고수하는데 한국은 반대로 재정확대와 통화 긴축정책으로 대응한다면 선진국이 떠넘기는 불황을 한국이 고스란히 떠안는 셈이다. 우리는 추경편성ㆍ복지지출 등을 확대하면서 금리는 6개월째 동결하고 있다. 환율안정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이다. 이런 잘못된 정책조합이 경기침체를 불러들이고 있다. 그 결과 수출이 감소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환율을 안정시키고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려면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응해서 우리도 확장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그럴 경우 우리는 원화의 급격한 평가절상을 억제할 수 있으며 경기침체도 완화될 것이다. 선진국은 자국의 경제불황을 떠넘기려 드는데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원화 강세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기업은 원화 강세에 대비해서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 일본은 지속되는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계속 늘었다. 독일이 현재 다른 유로존 국가와 달리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것도 기업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약화되면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고 경제도 어려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를 확대하고 외국인투자도 적극 유치해야 한다. 기업투자를 국내에 유치하고 붙들어두기 위해서 구조조정 등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하며 정부는 무엇보다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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