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라크 급진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공격으로부터 소수민족을 구출하기 위해 지상군 투입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정권의 소극적 중동외교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는 가운데 당초 "지상군 투입은 없다"고 선을 그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정책이 점차 개입의 수렁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IS의 공격을 피해 신자르 산악지대로 피신한 소수민족 야지디족을 구출하기 위해 지상군을 직접 투입하는 쪽으로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상군 투입이 현실화할 경우 지금까지 제한적 개입만 강조해온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정책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관계자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야지디족에게 안전한 탈출로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지상군 작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식료품과 물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것은 임시방편밖에 안 된다"며 "나무나 은신처 등이 없는 산악지대에서 야지디족이 IS 반군과 섞일 경우 반군 소탕작전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라크에 피신 중인 야지디 난민은 수천명에서 최대 3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당장 야지디족 구출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130명의 추가 군사고문단이 현지에 추가로 급파됐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고난도 임무수행 경험이 풍부한 해군과 특수작전부대 소속 군인들로 구성된 군사고문단이 이날 오전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들을 통해 현지사정을 파악한 뒤 야지디족 구출방안을 마련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할 예정이다. 앞서 파견된 250명의 고문단은 이라크 정부군의 군사작전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이라크에 점차 발을 깊게 담그기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의 소극적 개입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그의 중동정책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11년 이라크 철군 이후 선거를 통한 정권수립 방식으로 이라크 국가 재건을 도모했지만 수년간의 권력공백은 결국 IS 같은 무장단체의 세력확장을 초래한 것으로 지적된다. NYT는 "이라크는 미국의 야심찬 중동정책의 무덤이 됐다"고 혹평했으며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전 전 국무장관도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하는 상황이다. LA타임스는 "중동에서 발을 빼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리밸런싱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라며 "안보상황이 악화하는 쪽에 자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상전에서 IS 세력과 맞서기 위해 쿠르드자치정부에 대한 서방의 군사지원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무기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쿠르드군이 있는 북부 이라크 지역으로 실어나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영국은 또 야지디족을 돕기 위해 공군 토네이도 전투기 8대와 치누크 헬기를 활용하기로 했다.
쿠르드자치정부에 대한 지원은 사실상 이들의 독립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아 당초 수니-시아-쿠르드족 단일 민주주의 정부를 구성하려던 미국의 구상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IS라는 최악의 세력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IS를 저지하기 위해 쿠르드 독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군사작전을 벌이는 동시에 이라크 중앙정부를 안정시키기 위한 양동작전도 펴고 있다. 이란·사우디아라비아·터키 등 중동국가들도 12일 잇따라 하이데르 알아바디 새 총리 지명자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란도 새 총리 지명에 강력히 반발해온 누리 알말리키 총리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이란 정부 내 권력갈등이 소강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이란이 알아바디 총리 지명과 관련해 사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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