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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산책] 박물관이 호텔숲에 묻힌 도시, 서울

1400년 유구한 역사의 서울 박물관 아닌 호텔만 우후죽순

문화 보존, 관광산업에도 이득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의원

박물관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기원을 찾으려면 기원전 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토레마오스 1세는 알렉산드리아 궁전에 문예 ·미술의 여신 뮤즈(muse)에게 예를 올리고 또한 학문연구를 하였던 곳을 뮤세이온(Museion) 이라고 했다. 이는 대학의 기원이기도 했다. 프토레마오스 2세는 부왕(父王)의 뜻을 이어 궁전 일부에 철학자의 조각, 진귀한 보물, 미술품 등 각종 수집품을 모은 후에 이곳에 그리스 학자들을 초청해 문예와 철학을 연구하며 교제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로마 시대 이후 르네상스까지는 귀족 ·호족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데 현대적 개념의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구입과 상납, 약탈한 보물들을 집안에 두면서 세를 과시했던 가정박물관(家庭博物館) 형태였다.

근대박물관으로 변화를 이끈 인물로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공작을 들 수 있는데 메디치는 막대한 부를 미술품수집과 작가를 지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수집의 결과로 세계최대 개인 수집품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메디치미술관이 남아있다.

인도 항로와 신대륙의 발견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근세자본가들도 한 몫 했다. 이들은 신대륙에서 거의 노략질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보물, 희귀광물, 고고학적 유물 등을 모아 두고는 자신들의 욕망을 과시하기 급급했다. 수집으로는 한계를 느낀 근세자본가들은 결국 이렇게 축적한 부를 통해 멸망한 고대도시의 터를 전부 매입하기 이른다. 땅속에 있었던 고대도시의 보물은 이들의 도굴에 의해 자본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근세자본가의 욕망에 의해 미술품과 고고학적 유물이 수집되었는데, 모이고 쌓이면 기호에 맞게 되팔고 다시 사는 패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가격이 문제였다. 가격 결정을 위해 수집품들의 생산연대와 생산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했다. 이로써 미술품의 경우는 작가, 제작 연대, 작품해설, 작품의 수준을 결정해줄 미술전문가가 필요했으며 도굴한 유물도 편년이 가격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미술품과 고고학적 유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학문이 태동하는데 이른바 미술사와 고고학이다. 역설적이게도 미술사와 고고학의 태동은 욕망의 보조학문이라는 아픈 상처가 존재한다.

이후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이후는 개인적 자본을 넘어 국가 즉 제국주의에 의한 욕망이 표출된다. 제국주의는 자국의 정치·경제·군사·산업적 세를 과시하는 장으로 만국박람회를 열었다. 서구 제국주의는 식민지 약탈의 부산물과 산업시대 결과물을 자국의 이익과 욕망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며 이익을 극대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의 재산을 관리했던 이왕직(李王職)이 박물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제에 의한 궁궐내 박람회를 통해 근대 박물관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박물관의 원조는 유럽이지만 기폭제는 20세기 미국의 경제성장과 거대재벌들의 등장이다. 당시 록펠러, 카네기, 필립, 몰간 등의 거대재벌들이 상속이나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 수집품을 기증하거나 사들이는 등 박물관을 만들거나 지원하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즉 제국주의 국가권력에서 자본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밟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본과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박물관이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나 도시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기초가 되기에 이른다. 아마도 1000년 넘은 거대도시는 대부분 훌륭한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도시를 역사문화도시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1400년이 넘은 오랜 도시 서울은 초라하기만 하다. 요즘 서울은 역사문화도시라고 부르기에 부끄러울 정도가 됐다. 곳곳에 우후죽순 호텔이 들어서면서 외국인을 위한 ‘호텔도시’를 추종하는 민망한 도시가 되어버렸다. 관광산업 발전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호텔 건립이 불가피하다고 일부 주장하지만 같은 경제적 논리로 봐도 역사적인 유적터와 문화가 남아 있어야 더 큰 돈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더 많은 박물관을 짓는데 전력했던 카네기와 록펠러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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