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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껍데기와 국가혁신

인사청문회서 공직자 허상 드러나 '껍데기 엘리트' 압축성장이 원인

도덕·사회적 책임 없는 지식인 양산

비정상의 정상화 계획 실천으로 병폐 걷어내고 국가 바로 세워야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각·殼)을 말한다. 거짓이나 가짜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한 것, 허구에 차 있는 것이다. 반대말은 알맹이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껍데기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다. 화투에서도 끗수가 없는 패짝을 껍데기라고 한다. 똥 껍데기, 비 껍데기, 흑싸리 껍데기처럼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을 이른다.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에서도 껍데기는 자주 인용됐다. 시인 신동엽은 1960년대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통해 허구로 가득 찬 세상을 질타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허위나 겉치레는 사라지고 순수한 마음과 순결함만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직설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새삼스럽게 껍데기라는 단어가 되살아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이 그려진다.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계기다. 편·불법으로 점철되고 거짓말로 가려진 후보자들의 가짜 인생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껍데기는 가라'는 말이 다시 회자된다. 학생들의 본보기가 돼야 할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논란의 정점이다. 지난 15일 지명 철회된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껍데기는 가라'를 외쳤다.

청문회에서 쏟아진 여러 의혹들은 우리 지식인 사회에 내재해 있는 병폐들을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 논문 표절, 제자 수당 가로채기, 칼럼·원고 대필 등 편법과 탈법에 거짓말까지. 표절과 불법적인 연구비 횡령은 관행으로 포장되고 관행을 받아들이는 순간 정상적인 사제관계는 허락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자부심은 온데 간데 없어진다. "대필이 아니라 글쓰기 연습(을 시킨 것)"이라고 변명하는 김 후보자처럼 문제의식조차 없는 지식인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껍데기 엘리트'가 양산된 배경은 압축성장이다.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짧은 기간에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는 속임수와 편·불법을 눈감아주는 '대충대충'이 있었다. 압축성장이 군사작전 하듯이 명령과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탓에 도덕이나 자율, 사회적 책임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안중에도 없는 지식인이 탄생했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으로 지탱해온 대한민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게 세월호 참사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도 능력도 책임감도 없는 공직자들에게 국민은 분노하고 절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말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우리 스스로 털어도 먼지가 안 나도록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사문제와 관련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한 말이다. 최근 인사청문회를 보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언급처럼 시대적 요구가 변했다. 알맹이는 없이 번지르르한 껍데기만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세상은 지났다.

국가혁신도 결국 껍데기를 걷어내고 알맹이를 채워 국가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 비정상의 정상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비전만 요란하게 발표해놓고 구체적 실행 없이 흐지부지된 정책이 얼마나 많았는가. 관피아·정피아·교피아의 적폐를 그간 몰라서 해결하지 못했던 게 아니다. 이를 바로잡는 게 국가혁신이다. 오랜 세월 쌓인 폐단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힘들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알찬 내용을 만들어 강력하게 추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사람이든 계획이든 껍데기로는 국가혁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shim@sed.co.kr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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