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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국가대표 사격선수, 조직폭력배,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바로 그날,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극비 프로젝트를 펼친다. 영화 '26년'의 얘기다. 2006년 연재된 강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29년'이란 이름으로 첫 제작을 시도했지만 각종 외압설과 함께 매번 제작이 무산됐다. 그렇게 4년이 흐른 2012년, 영화사 청어람은 기존 투자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크라우드 펀딩'(다수의 사람들이 특정 프로젝트에 소액을 기부, 후원하는 자금조달 방식)으로 자본을 모으고 그 과정에서 모아진 사회적 관심을 개봉까지 이어가는 방식이다.
최용배 영화사 청어람 대표는 27일 오전, 종로구 사간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영화 '26년' 제작 및 크라우드 펀드 관련 기자회견'에서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영화 원작자인 만화가 강풀, 신현욱 팝 펀딩 대표도 함께했다.
◇ 만남
2006년 영화 '괴물'의 촬영이 완료되고 후반 작업 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 최 대표는 포털 다음(Daum)에 연재된 강풀의 웹툰 '26년'을 접한다. 빨려 들어가는 마력이 있었다는 그는 영화화를 결심한다.
"그간 광주 항쟁을 다룬 작품이 많았지만 '26년'은 그것을 배경으로 '현재'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5·18 항쟁을 잘 몰랐던 사람들 조차 그 당시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고 생각했고요."
최 대표는 이후 시나리오 과정과 캐스팅 등을 완료하고 2008년 늦여름 촬영할 만큼의 준비를 마쳤다. 4개 업체에서 투자를 약속 받았고, 전체 제작비 60억 원 중 70%(약 40억원)를 확보했었다. 그렇게 선 투자 받은 20억원을 가지고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 굴곡
순조로운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촬영을 열흘 앞두고 투자 하겠다던 회사가 돌연 투자 불가 의사를 타진했다. 이후 도미노처럼 투자를 약속했던 나머지 회사들도 철회하겠다고 했다. 결국 촬영은 중단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각종 외압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최 대표는 투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고 별다른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았다.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최 대표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바라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 분들의 후원으로 끝까지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영화 '26년'의 제작 재개 움직임도 그렇게 시작됐다.
◇ 다시 피어나다
영화'26년'의 크라우드 펀딩은 3월 26일부터 4월 20일까지 굿펀딩(www.goodfunding.net), 팝펀딩(www.popfunding.com), 소셜 펀딩 개미스폰서(www.socialants.org) 등 3개 사이트를 통해 진행한다. 목표 금액은 10억원. 2만원· 5만원 단위로 후원할 수 있으며 2만원 후원자에게는 특별 시사회 2인 초대권과 영화 포스터, 5만원 후원자에게는 2인 초대권과 포스터, 영화 DVD와 엔딩 크레딧 성명 등재 등의 특전을 제공한다. 27일 오후 1시 현재 1,178명이 참여해 약 5,500만원이 모아졌다. 최 대표는"어제 마중물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많은 분들이 후원해 준 것을 보고 정말로 이분들과 함께 완성된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의지를 확인했고 막중한 책임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 이름은 당초 광주사태의 29주년이 되는 2009년에 개봉할 것을 염두에 두고 '29년'으로 했지만 이미 몇 년이 흘렀고 원작의 이름을 감안해 '26년'으로 정했다.
메가폰을 잡을 감독과 출연 배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 대표는 "펀딩이 목표대로 잘 이뤄지면 11월 개봉이 가능하고 또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 원작인 웹툰 '26년'의 판권 계약기간은 이미 완료됐지만 원작자 강풀은 사용을 허용했다. 강풀은 "몇몇 어린 세대들은 5·18과 8·15를 헷갈려 한다. 이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구세대의 잘못이다. 영화를 끝까지 완성해서 광주의 그날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며 제작자 최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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