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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산업, 이젠 세계를 무대로] <3> 전문가 양병책 나와야

금융전문인력 비중 8.9%로 세계 46위 그쳐<br>순환보직·연공서열 위주 인사 과감히 탈피를<br>정부도 '맨파워' 양성 정책지원 아끼지 말아야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지 주최 ‘금융허브 구축을 위한 정상회의’에 참석한 한 패널은 “한국 금융인들과 접촉한 결과 전문지식이 뛰어나면 영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고 영어를 잘하면 금융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무렵 한국을 방문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을 적합한 곳에 배치해야 한다”며 “외국인 투자를 적극 유치하면서 이를 지원할 인재들이 많은 게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허브로 도약한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로서 부(富)와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식민지 유산인 영어를 자원으로 활용해 외국 자본을 유치,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는 115개 은행, 51개 종합금융회사, 133개 보험회사, 60개 증권회사가 경쟁하는데 대부분 외국계 회사다. 금융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전적으로 맨파워에 의존한다. 한국 은행산업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점포를 놓고 창구 텔러가 돈을 세는 초보적 수납기관의 수준에서 벗어났다고 자부할 금융인들은 몇이나 될까. 인맥과 연고ㆍ노동조합에 의지해 자리에서 버티는 사람들이 버젓하게 행세하는 게 우리 은행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머리 좋은 사람 한명이 수천 텔러의 영업규모를 뛰어넘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융산업이다. 국제 경제의 흐름을 잘 읽고, 금융논리를 잘 알아 돈 되는 곳에 투자할 줄 아는 전문가가 이제 은행을 먹여 살리고 국부를 창출해야 한다. 그런 인재는 국제 시장의 금융지식은 기본이고 외국어에도 능통해야 한다. 금융전문가 양병론은 한미 자유무역협상(FTA)이 타결될 경우에 대비해서도 절실한 이슈다. 한국에서는 한미 FTA가 타결되면 쌀시장이 개방된다고 난리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금융시장 개방이다. 문제는 세계 금융시장을 쥐고 흔드는 미국 금융가의 상품들이 구멍 난 그물을 뚫고 한국에 들어올 때, 한국 금융가에는 이에 대처할 실력자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앞으로 10년 후면 연금시장이 200조원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미국 연금상품이 들어와 국내 금융상품을 고사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금융상품은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미국 금융상품은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므로 안전성과 수익성에서 대단한 매력을 지닌다. 그들을 능가할 금융상품을 만들어낼 인재가 국내 은행에 얼마나 있는가. 김동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융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허브의 복잡한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국제적인 역량을 지닌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며 “고도화된 금융산업에 맞는 전문 인력을 과거와 같은 주먹구구 방식으로는 길러낼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은행업이 텔러와 지점장의 영업력에 의존하는 내수산업에 안주하면서 글로벌 금융지식을 이해하는 인력과 이들을 교육시키는 시스템, 급여체계 등은 후진적 구조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비교분석에 따르면 금융 전문인력 수준에서 한국은 주요 60개국 가운데 46위에 그쳤다. 학위 또는 자격증을 가지고 5~6년의 특정 직무 경력 및 외국어 능력 보유자를 금융 전문인력으로 정의할 때 한국 금융 부문의 전문가 비중은 8.9%에 불과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51.3%, 홍콩은 43.8%에 달했다. 보조인력 비중은 한국이 86.7%를 차지, 홍콩(37.0%)이나 싱가포르(30.8%)의 두 배가 넘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홍성화 열린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외환위기는 금융 부문에서 문제가 생겨 국가가 부도를 맞은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금융허브를 하자면 인재 양성은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므로 국가가 정책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은 금융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앞 다퉈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을 도입하고 있다. 다른 경비는 줄여도 직원 연수비 규모는 해마다 늘려왔다. 하지만 해외연수는 대부문 단기교육에 그치고 내부 교육과정 역시 금융전문가 양성에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순환보직과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는 선진 금융인력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행원들에게 제공하는 MBA 연수 기회는 포상적 성격이 강하고 교육을 이수한 후에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 배치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박기순 산업은행 동북아연구센터장은 “외국계 금융기관과 비교할 때 국내 금융기관은 자금력이나 인지도ㆍ인력풀에 있어서 크게 뒤떨어진다”며 “인재양성도 중요하지만 길러낸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 데 대해 배 아파한다. 문제는 우리 금융기관 가운데 론스타 같은 실력과 배짱으로 외국에서 그만한 돈을 벌어오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은행산업도 국제금융시장의 고도의 기법을 배워야 하고, 그런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제조업만이 살 길’이라며 경제개발에 매진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많은 젊은이들이 외국에 기술을 배우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습득한 기술로 한국의 자동차ㆍ반도체ㆍ기계ㆍ화학ㆍ조선 산업이 세계적인 반열에 들게 됐다. 이제 금융기술을 배우러 외국, 특히 국제금융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에 많은 젊은 금융인들이 가야 한다. 그들의 기법을 배우고 정보를 교환하며 그 기술로 해외 금융시장을 개척해 돈을 벌어야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 ● 선진국의 금융전문인력 양성
정부서 기금 조성, 교육비 50% 지원
스위스-은행 자체연수 많고 자격증 취득에 역점
미국-직무별 로드맵 도입·사이버 연수등 다양
금융 선진국들은 금융전문가 양성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싱가포르는 금융인력 양성에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훈련 및 고용기회에 대한 정보와 인력자원센터로서 고급 인력풀 제도인 '콘택트 싱가포르'를 도입하고 국가 최고기구인 싱가포르국가고용연합회(SNEF)를 설치했다. 또 인력 양성을 위한 기금(SDF)을 조성해 교육훈련기관 설립, 금융인력 교육훈련 비용 등을 지원하고 있다. 싱가포르통화청은 지난 2000년 12월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금융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보고 5억싱가포르달러를 출연, 금융발전기금을 조성했다. 이 기금은 싱가포르 소재 금융기관과 기업이 금융전문가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체 연수과정을 운영하거나 전문가를 외부 연수기관에 파견하는 경우 이 비용의 50%를 지원한다. 그리고 교육훈련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지사 개설, 기존 교육기관의 시설 확충, 교육기관 운영 및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의 경비로 나머지 50%를 지출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금융교육훈련체제는 직급별 과정, 직능별 과정, 그리고 일반과정 등으로 세분화된다. 직급별 과정은 각 직급별로 실시되는 지도자 및 관리자 과정이며, 직능별 과정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무연수 과정이다. 일반과정은 비즈니스 동향, 기업 문화 및 철학 등을 내용으로 한 세미나로 진행된다. 싱가포르는 국내 외부위탁 연수기관으로서 싱가포르 경영개발원, 싱가포르 인적자원경영원, 싱가포르 훈련 및 개발협회 등을 지정했으며 미국과 유럽 등 외국 대학 등에 연수를 위탁하기도 한다. 스위스의 경우 직업훈련을 중시한다. 대규모 은행들은 자체적인 교육ㆍ훈련체제와 연수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지방은행ㆍ협동조합은행 등 중소 규모 은행들은 은행협회에서 제공하는 교육과정과 시설을 이용한다. 스위스에서는 은행원들의 전문역량 및 책임감 등을 높이기 위해 자격시험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방정부 감독하에 스위스 은행시험위원회와 스위스 재무분석 및 포트폴리오관리협회가 각종 자격시험을 감독, 관리하고 있다. 또 경제학 및 경영학 전문대학들이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3~4년 과정의 은행 경영 및 학위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5개 대규모 은행들이 설립한 스위스은행대학은 10주간 코스로 은행 고급 간부들에게 새로운 은행지식과 실무를 교육하고 있다. 스위스 중앙은행도 86년 은행연수원을 설립해 중앙은행ㆍ일반은행과 외국계 은행 직원을 대상으로 통화정책, 금융시장, 포트폴리오 관리, 위험관리 등을 교육하고 있다. 미국은 은행마다 연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연수방식을 가지고 있다. 씨티그룹의 경우 직원들의 직무능력 향상 교육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직무별 로드맵에 따라 교육내용이 부서장과 직원들간의 사전 협의를 거쳐 계획되고 부서장이 연수 대상자를 선정해 연수를 실시한다. 집합 연수와 사이버 연수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며 전문과정의 경우 위험관리, 생산 및 판매, 금융시장, 금융회계, 판매기술, 컴퓨터 등 다양한 교육과정이 진행된다. 세계 100여개국 3,400여개 해외 지사를 통해 지역별로 독립된 연수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영국 은행들은 다양한 연수체계를 가지고 있다. HSBCㆍ바클레이즈 등 대형 은행에서는 은행 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의 경우 은행 내부의 교수요원을 양성해 실시하고 있다. 관리자급은 경영대학원에 파견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거의 모든 대학이 경제ㆍ경영학부 내에 은행경영학 과정을 두고 있다. 고급 인력의 필요성을 느낀 독일 정부는 91년부터는 독일중앙은행 산하에 은행경영대학을 개설, 은행원들에게 강도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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