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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말뿐인 패션업계 동반성장


화단에 물을 주려는데 호스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돌아보니 누군가가 호스의 중간을 밟고 있다. 정책을 시행해도 효과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패션업계 유통구조를 두고 하는 소리다.

올해 초 중소기업청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개선 정책을 폈다. 납품하는 소상공인을 보호하려는 취지였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의 단가인하 행위가 줄어들고 백화점의 비용 전가 행태도 개선됐다. 하지만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현실은 전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대기업과 소상공인 사이에서 높은 수수료를 떼는 벤더사(중간 유통업체)들 때문이다.

최근 만난 패션업계 소상공인들은 중소 벤더사로 인한 고충을 털어놨다. 벤더사들은 판매가격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의 임가공비(손질·절단 비용)를 지불하고 있었다. 지난달 유명 홈쇼핑 브랜드에서 판매된 16만원짜리 수제화로 A대표가 받은 임가공비는 2,500원. 대기업과 직거래 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 제조마진은 1만1,000원으로 4배 이상 차이 난다. 신발 뿐만 아니다. B대표가 1만원에 넘긴 골프복 한 벌은 백화점에서 33만원에 팔리고 있다.

적은 마진마저도 제 때 받지 못하기 일쑤다. 벤더사와 소상공인 사이에선 어음 결제 비중이 여전히 높다. 현금 유동성 문제로 소상공인들은 인건비는커녕 매달 공장 가동비용 대기에도 빠듯하다. 국내 핸드백 생산업체들은 이러한 유통방식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도산했다.



일각에서는 원하는 임가공비와 대금 결제방식을 계약서에 명시한 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신고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소상공인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행상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조차 드물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계약서를 작성했다가는 벤더사에 밉보여 일감을 잃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달부터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해 소상공인들이 어음을 현금화할 수 있도록 했다. 중소상공인과 직거래하는 대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다. 필요한 조치가 맞다. 다만 근본적인 답은 아니다. 산업생태계를 흔드는 진짜 원인부터 분석해야 한다. 왜곡된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새로 만드는 지원제도는 의미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유통구조의 정상화를 모색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소상공인을 도와 준다고 요란만 떨게 아니라 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누가 호스를 밟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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