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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고대엔 식물 연구가 철학·천문학만큼 중요했다

■ 2천년 식물 탐구의 역사 (애너 파보르드 지음, 글항아리 펴냄)<br>아리스토텔레스부터 린네까지<br>방대한 문헌 분석·현장 답사통해<br>인문학적 관점 식물 연구 담아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인 알브레히트 뒤러가 1503년에 그린 '웃자란 풀밭' (왼쪽)은 사진 못지 않은 상세한 묘사로 식물의 습성을 정확히 짚어준다. 1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 약학자 디오스코리데스의 필사본에서 유래해 7세기에 제작된 그리스 '고문서' 에 수록된 '초롱꽃' (오른쪽) 그림은 이 식물의 독특한 열매 맺기 방식을 보여준다. /사진제공=글항아리

어릴 적 집 앞에 핀 꽃 이름을 알기 위해 어머니를 귀찮게 한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낯선 존재의 이름을 알고 나서는 그것을 다 이해하는 것 마냥 기뻤던 시절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식물이란 영역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됐을까. 식물 탐구의 역사는 놀랍게도 2,000년을 넘는다. '인디펜던트' 원예전문기자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테오프라스토스를 거쳐 스웨덴 생물학자 칼 폰 린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문헌 연구와 광범위한 현장 답사 등을 통해 인문학적 관점에서 식물을 탐구한 인류의 지성사를 파고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에서 식물과 동물에 대한 지식도 형이상학이나 천문학에 대한 지식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납득시킨 스승이었다. 그의 제자인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2~287년)는 식물이 인간에게 어떤 효용성을 갖는가가 아니라 식물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식물을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의 탐구에 기반이 된 것은 철학이다. 그는 철학자가 사물을 본질에 따라 분류함으로써 자연계의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생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사상을 식물에도 적용해 식물의 철학자로 불리게 된다. 알파벳 순으로 식물을 나열한 백과사전을 쓰기보다는 식물의 본질에 관심을 갖고 의문을 파헤치는 데 노력을 기울였던 것. 식물을 묘사할 때도 성장 습관, 나무 껍질, 생산되는 목재의 유형, 열매와 뿌리의 특징 등 다양한 지표를 사용해 궁극적으로 자연 과학이 발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저자는 "하지만 그의 사유는 당시 탐미주의적이던 아테네인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테오프라스토스가 식물 탐구에 끼친 영향을 알게되기까지 무려 1,200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고 말한다. 식물 탐구사의 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출판 문화의 발전이다. 서기 1세기까지 사람들은 대부분의 글을 긴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썼는데, 글을 읽기 위해서는 한쪽 손으로 두루마리를 펴면서 다른 손으로 말아야 했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데는 불편했다. 하지만 서기 1세기 무렵 파피루스를 널찍하게 한 장씩 만들어 오늘 날의 책 형태로 만드는 방법이 발달하면서 글과 더불어 식물 그림을 함께 실을 수 있게 된다. 15세기 중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계기로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책의 콘텐츠가 기계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했다. 오히려 글보다는 그림의 발달이 보다 혁명적이었다. 무명의 화가가 1280~1300년경에 제작된 약초의학서에 생동감이 넘치는 식물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시작된 작은 혁명은 15~16세기까지 실제 모습에 가까운 식물을 그리면서 '읽을' 수 있는 그림으로 발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건물 구조만큼이나 식물 구조에 관심을 기울였고 알브레히트 뒤러는 꽃이 줄기에 놓여 있는 방식, 풀잎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에서 솟아나는 방식 등 식물의 습성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점차 식물은 약초 의학서에서 벗어나 태피스트리나 성당의 문, 초상화 등을 장식하게 됐다. 저자는 식물 연구에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후대에는 그다지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을 소개하는 데도 지면을 할애했다. 영국의 성직자 윌리엄 터너는 1564년 '신본초서'를 완성했지지만 영국인 300만 명 가운데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50만 명에 불과했다. 터너가 죽고 나서 한참 후에야 영국에서 식물 연구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다. 저자는 '식물의 아버지' 린네의 식물 명명법조차 대상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동시대에 비난받았다며 식물 연구자들의 성공과 실패는 당시 사회적 환경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700쪽에 달하는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단연 약 160개에 달하는 천연색 그림이다. 다양한 그림들은 책의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읽은 이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3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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