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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86> 능력 중심 사회


과거 통일신라는 골품, 즉 계급에 따라 관원의 승진 범위가 제한되는 사회였습니다. 삼국시대 우리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도 19세기 메이지 유신 전까지 ‘가격’(家格), 즉 집안의 수준에 따라 오를 수 있는 관직을 제한했습니다. 또 이들은 각각 계급에 따라 승진 속도도 달리 했습니다. 최상위 계급에 속한 귀족 남성은 30대에 차관급 보직에 올랐던 반면, 그렇지 못한 계급의 인물들은 4-50대가 되어서도 한직을 떠돌며 승진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어렵사리 조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다른 젊은 귀족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경우에는 금세 자리를 내 주어야 하는, ‘좀 더러운’ 논리가 관료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당장 신라가 망한 이후 고려 시대부터는 광종(光宗)에 의해 ‘제술과’와 ‘명경과’, 즉 중국의 과거를 본뜬 시험제도가 도입됐습니다. 이른바 능력 중심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명문 귀족이 아닌 지방의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대부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검증받기만 하면 출세할 수 있는 그런 제도를 만드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유학(儒學)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임금이 당면한 국정 과제를 얼마나 이론에 맞게 제대로 분석하고 창의적인 답안을 내놓느냐가 당락을 결정했습니다. 암기력과 적용 능력이 함께 담보되어야만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인사 채용 방식은 이후 조선시대에서도 중요한 기준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조선의 경우 아버지나 가족의 천거로 고위 관직에 오르는 음보(蔭補)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승진이 제한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천으로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다시 과거를 통해 스스로를 검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영란법이 통과되면 아마 공공기관의 채용 청탁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사실 많은 공기업들이 채용 시험과 서류 심사를 통해 투명하게 사람을 뽑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한 분위기가 자주 포착되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부모가 임원으로 해당 기관에 근무하고 있는 경우 채용뿐만 아니라 근무지 배치에 이르기까지 특혜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2016년부터 NCS(국가직무능력평가) 중심의 채용 방식을 늘리고 자리를 위한 청탁은 엄단하겠다고 정부는 밝혔습니다. 능력 중심 사회의 기치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평가이든지 허점은 있습니다. 정말 그 사람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문항인가의 문제에서부터, 한 사람의 역량과 태도를 정량화된 수치로 평가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의 문제가 대두될 수 있습니다. 사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사람을 뽑는 또 다른 기준이었던 인적성검사만 하더라도 ‘아이큐테스트’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빨리 문제를 푸는 사람이 높은 점수를 가져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니까요. 모든 평가는 그 시대에 가장 바람직한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 이상과 철학을 품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진정한 능력 중심 사회가 되려면, 이 시대의 인재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일률적인 기준으로 잴 수 있는 그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가끔 인사 담당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고민하고 시달려야 할 필요가 있는 법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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