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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KBS 2TV에서 방영된 '탑밴드2' 4강전에서 탈락한 인디밴드'트랜스픽션'은 요즘 '나는 가수다'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국카스텐'보다도 일찍 결성된 그룹이다. 트랜스픽션은 8강 A조에서 2위를 차지하며 준결승에 올라 자작곡 '너를 원해'로 신나는 무대를 선보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인터뷰 장소에 나온 '트랜스픽션'의 얼굴에서 탈락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최근 소속사와 계약종료에 따라 다시 인디밴드로 복귀, 자신들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그들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나가수에서 '국카스텐'이 뜨고, 홍대앞이 인디의 성전으로 인식되면서 홀대 받고, 배곯던 인디밴드들에게도 햇볕이 들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아직 곤고하다. 대중이 좋아하는 감미로운 발라드 대신 굳이 방송에서도 외면 받는 하드록이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이 하드록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베이스기타 손동욱(36)에게 물었더니 답이 돌아왔다.
"그건 우리가 시작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밴드를 시작한지 20년이 됐고, 그룹을 결성한지는 12년이 됐다. 지금 하는 음악은 완전한 하드록은 아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처음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정통 하드록을 했다.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그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타를 맡고 있는 호진(36)은 "하드록은 멜로디를 배제한 사운드와 비트만으로도 팬들을 사로 잡을 수 있는 맛이 있다"면서도"사실 요즘엔 장르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장르를 따지는 것은 평론가들의 몫이고, 밴드가 음악을 만들 때는 그 순간까지 해왔던 모든 음악들이 녹아 들어 탄생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보컬을 맡고 있는 해랑은 "탑밴드에 출연했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그냥 록밴드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며"대신 록안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95년까지만 해도 공연을 한 번 하면 5만원을 받아 삼겹살 한번 먹으면 남는 게 없었다"는 말을 해 화제가 됐었다.
이에 대해 드럼을 맡고 있는 천기(37)는 "지금도 그런 풍토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며"유명해진 다음부터, 티켓을 팔 수 있을 때부터 돈이 들어 온다"고 말했다. 클럽들도 근근히 먹고 사는 형편인지라 오히려 밴드들이 대관비를 내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얘기대로라면 20년 넘게 주린 배를 움켜 쥐고 음악을 해 온 셈이다. 부모에게 눈치도 보였을 테고 딸린 식솔의 끼니 걱정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내들이, 그리고 가장들이 지고 나아가야 할 십자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천기는 "우리를 지탱해 온 힘은 열정"이라며"나는 오히려 열정을 통해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호진은 "매일 자장면을 먹으면서 음악을 했지만 그 때는 힘든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고생이었더라"는 얘기로 뒤를 이었다.
최근 나가수에 출연하며 스타덤에 오른 '국카스텐'은'트랜스픽션'보다 나중에 시작한 후배그룹이다. 함께 홍대 앞에서 고생을 하다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말을 아끼고 있던 그룹 넥스트 출신으로 최근 합류한 데빈(39)이 마지막 질문에 방점을 찍었다.
"록이 공중파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시장이 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선후배들의 노력이 쌓인 덕분이지요. 좋은 음악만 하면 인정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위안을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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