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뤄시허는 서반에 실리를 탐하는 바둑은 아니다. 어느 편이냐 하면 두터움을 이용한 공격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극단적인 실리를 탐하고 있다. “일종의 약올리기 작전이지요. 실리를 챙겨 버리면 상대방은 어쩔수없이 외세 바둑을 두게 되는데 그때 퐁당 뛰어들어가 삭감해버릴 예정입니다. 이창호가 공격에는 그리 솜씨가 출중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뤄시허가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겁니다.” 김성룡9단의 해설이다. 좌상귀를 선수로 유린한 뤄시허는 좌하귀마저 큼직하게 접수해 버렸다. 흑33이 놓인 시점에서 이창호는 10분간 뜸을 들였다. 검토실의 바둑판 위에는 참고도1의 백1 이하 7이 그려져 있었다. 백으로서는 당연히 이 코스로 두어나가야 하면 백이 나쁘지 않은 형세라는 것이 청소년 기사들의 공통적인 견해였다. 참고도1의 수순 가운데 백7은 초심자들이 기억해둘 만한 것. 참고도2의 백1, 3으로 따내는 것은 흑에게 4를 허용하므로 백의 불만이다. 그런데 이창호는 참고도1의 백3으로 두지 않고 색다른 취향을 선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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