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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900회

최태지(정동극장극장장)

‘900회’란 다름아닌 정동극장의 연간 공연 횟수이다. 4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그만한 공연횟수라면 기네스북감이라는 말을 들었다. 쉬는 날을 빼고 하루에 3회 이상 공연이 오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6~7회 공연을 할 때도 있으니 웬만한 영화관보다 공연횟수가 많은 셈이다. 저녁에 공연이 시작되는 다른 극장과는 달리 우리 극장에서는 오전10시부터 무대막이 오른다. 공연도 보고 주변 박물관 견학도 하는 ‘문화특활’이라는 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오전에만 1,000명에 달하는 초ㆍ중ㆍ고교 학생들이 정동극장을 찾는다. 잠시 숨을 돌린 후 점심에는 주변 직장인과 시민을 위한 ‘정오의 예술무대’가 펼쳐진다. 오후4시에는 외국인을 위한 전통문화공연이 펼쳐지고 오후8시에는 연극ㆍ콘서트 등 기획공연이 시작된다. 하절기의 심야 라이브 공연까지 포함하면 정동극장의 무대는 그야말로 1년 내내, 하루종일 쉴 틈이 없다. 영화관과 달리 공연장은 프로그램에 따라 계속 무대를 바꾸고 조명과 음향을 새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합공연장이 아닌 정동극장과 같은 소극장에서 이렇게 빡빡한 스케줄로 공연을 올리면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시설물에도 과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다. 이미 공연장의 모든 의자가 삐걱거리고 무대시설도 낙후돼 리노베이션이 시급한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 극장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게 된다. 공연을 보고 갑자기 전원이 들어온 듯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우리 장단에 흥겨워하는 외국인들, 숨을 죽이고 무대에 빠져드는 일반 시민과 직장인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1년에 한번 갈까말까 하는 유명 아티스트의 비싸고 화려한 무대가 아니다. 생활 가까운 곳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의 진심어린 무대를 더 자주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서민들이 쉼터처럼 갈 수 있는 열린 공연장이 많지 않기에 1년에 900회 공연을 치르느라 몸살을 앓는 공연장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도저히 횟수를 줄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최고의 시설에서 저렴하게 최고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 요즘 여기저기 리노베이션 비용을 구하러 다니기 바쁘다. 문화로 살 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주실 분들이 계신 곳이라면 필자는 발이 부르트도록 찾아다닐 생각이다. 최근 뉴욕의 링컨센터,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밀라노의 라스칼라 등 리노베이션을 추진 중인 세계적인 공연장들에는 기부금이 줄을 섰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리노베이션이 더 시급한 곳은 멀리 떨어진 문턱 높은 최고급 공연장보다 작더라도 가까운 곳에 열려 있는 공연장일 것이다. 내년으로 10주년을 맞는 정동극장이 언제든 편하게 들러 일상에 찌든 사고를 ‘리노베이션’할 수 있는 도심의 허파로 새롭게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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