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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발전을 이끌 과학계의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만델라 키드’라는 말이 있다. 흑인인권운동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이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1994년에 출생한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도 만델라 키드가 있다. 1994년생은 아니지만 그 해에 남아공의 흑인들은 꿈조차 꾸지 못했던 대학에 입학해 지금껏 과학자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제임스 치롱고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UST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캠퍼스에서 측정과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그의 꿈과 희망, 열정 가득한 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Q. 한국에 남아공 유학생이 드문 것으로 아는데 UST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남아공의 벤다대학을 졸업하고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림포포대학에서 1년간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남아공의 표준연구원인 남아공국립계측연구원(NMISA)에서 7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NMISA의 가스분석 책임자로 근무하던 중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개최된 전 세계 표준연구원 박사들이 모이는 국제 학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지금의 지도교수인 김진석 교수님을 우연히 만났죠.

김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UST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과 상호 연계된 교육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KRISS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김 교수님이 남아공에서보다 훨씬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다며 적극 추천해주셔서 유학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Q. 표준연에서는 어떤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까?

가스 구성 요소들의 농도 표준을 정립하는 가스분석 분야를 연구 중입니다. 예를 들어 비활성 가스인 아르곤(Ar), 네온(Ne), 크립톤(Kr), 크세논(Xe), 헬륨(He)의 농도 비중을 측정해 표준치를 정합니다.

이렇게 표준연에서 결정된 표준치는 국가표준으로 인정돼 기업들이 가스 구성요소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죠. 표준연은 또 기업들에게 각종 분석기의 보정이나 공정관리, 품질관리용으로 쓰이는 표준가스를 제조·공급하기도 합니다.

Q. 한국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았나요?

처음 왔을 때는 추운 날씨 때문에 힘들기도 했어요. 남아공은 겨울에도 영상 10℃ 밑으로 기온이 떨어지지 않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응이 됐습니다. 한국 음식도 맛있고요. 쇠고기 샤브샤브, 비빔밥, 치킨 등을 좋아해요.

교회도 제게는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안식처입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교회에요. 표준연 인근의 교회에 다니는데, 외국인 모임이 있어요. 남아공 출신도 2명이나 됩니다. 1명은 KAIST에 재학 중이고, 1명은 영어강사에요. 참, 아내를 만난 곳도 남아공의 한 교회에서였어요. 첫 눈에 반해서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죠.

한국 학생들하고는 주로 축구를 통해 교류합니다. 제가 축구 마니아거든요. 점심시간을 최대한 쪼개서 축구를 합니다. 포지션은 수비수에요.

Q. 한국에서 겪은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UST의 한국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주에서 비빔밥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요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작년 9월 열렸던 학술문화제도 제게는 특별한 추억이었습니다. 많은 학생들 앞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상까지 받았거든요. 혼합가스의 정밀 분리·분석에 대한 주제였어요. 가스 크로마토그래피(GC)라는 기술을 사용해 99.99%의 고순도 헬륨을 성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불순물 테스트를 실시하는 연구였죠.

Q. 과학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과학은 곧 도전이라 생각해요. 도전을 통해 성과를 얻는 과정에 흥미를 느껴 과학을 공부하게 됐죠. 남아공 과학계에서 일가를 이뤄서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도 있고요.

과학을 미래의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마침 그 즈음에 옥중에 있던 만델라 전 대통령이 풀려나면서 사회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 흑인학교에서는 기초적인 수준의 과학만 가르쳤지만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출소 이후에는 흑인도 고급 과학을 접할 수 있게 됐어요. 흑인에게도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만델라 대통령처럼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과학을 택했습니다. 저는 만델라 키드로 불리는 1994년생은 아니지만 만델라 전 대통령의 덕을 본 수혜자라고 할 수 있어요. 만델라 키드와 다름없죠. 만델라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혜택은 대학 진학 이후에도 있었습니다. 학비가 없어서 1년간 대학을 쉬어야 했지만 장학금 덕분에 졸업을 할 수 있었거든요.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일이죠.

Q. 남아공과 비교해 UST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요?

남아공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습니다. 특히 표준연은 표준측정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연구기관이에요.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죠. UST는 학생이 연구기관에서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춘 곳이에요. 그래서 각 분야 최고의 성과를 이룬 교수님에게 직접 배울 수 있어요.

덧붙여 연구기관의 연구원들과 직접 대면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연수장려금 등 재정지원까지 풍부해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어요. UST로 유학을 고려하는 외국인 학생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주세요.

최대한 빨리 박사학위를 받고 남아공으로 돌아가는 게 최우선 목표입니다. 최소 졸업연한이 4년이니 이 기간 내에 학위를 마치고 싶어요. 이제 1년 남았는데 그 안에 논문을 끝내야 합니다.

이후에는 남아공의 NMISA에 복귀해서 가스측정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지고, 국가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의 과학도들에게 UST를 소개해 아프리카와 UST의 가교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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