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파급 효과 막대한 서비스업 규제 풀지 않고 일자리 만들자는 건 모순
무역비중 높은 나라에서 개방은 선택 아닌 필수, FTA 적극적으로 임해야
세계경제 더블딥 없겠지만 크게 좋아지지도 않을 것
"우리는 이제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공일(사진)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50층에 위치한 협회 회장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한국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방책으로 발상의 전환을 주문했다. 국내의 7만개가 넘는 무역업체 회원사를 대표하는 협회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공 회장은 "과거 우리 무역규모가 작을 때는 10~20% 혹은 50% 성장도 가능했지만 세계에서 아홉 번째 무역대국이 된 지금은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이제는 물량적인 측면보다 고부가가치 상품이나 서비스 분야 등에 역점을 둔 보다 유연한 무역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보건ㆍ의료 분야의 영리법인을 사례로 들며 상대적으로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서비스 분야 활성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에 영리법인이 세워져 외국의 고급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국내 의료시설을 찾는다면 의사ㆍ간호사ㆍ간병인 등 상당수의 의료 관련 일자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울러 외국인 환자들이 활용할 호텔∙요식업, 관광업 등에서도 일자리 창출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런 걸 다 묶어놓고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요. 교육ㆍ의료ㆍ보건ㆍ관광ㆍ물류ㆍ컨벤션 등 서비스 산업을 강화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줘야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이 정부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을 통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공 회장은 대외적으로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체제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거버넌스로서 역할을 공고히 하는 것이 세계경제 차원뿐 아니라 우리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강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된 세계경제의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 G20의 궁극적인 목표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G20이 잘돼야 세계가 잘되고 세계가 잘돼야 우리가 잘됩니다. 그 자체가 우리를 위한 것인 만큼 G20이 잘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G20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 G20 정상회의는 성공적인 회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신흥국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한번 반짝 일회성 리더십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리더십을 발휘해나가야 합니다. 리더십을 발휘하자면 그에 걸맞은 책임도 수행해야 합니다. 국제사회, 특히 개도국이 한국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세계가 인정한 서울 G20 정상회의와 비즈니스서밋은 사공 회장의 역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당시 그는 국무위원의 3분의1이 참여한 대통령직속기구인 G20정상회의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그 자체가 세상에 없던 제도로 우리의 행정혁신(administrative innovation)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준비위는 사상 최초로 비즈니스서밋을 G20 프로세스의 일환에 포함시켰고 비즈니스서밋의 결과보고서는 재무장관회의ㆍ셰르파회의 등을 거쳐 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 정상이 G20 정상들에게 직접 보고하는 과정을 만들었다. 바로 이런 점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여타 정상회의 개최시 경제인들이 현안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던 최고경영자(CEO) 회의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크게 기여한 게 G20 프로세스 강화입니다. 지난 2008년 11월 워싱턴정상회의와 2009년 4월 런던정상회의 이후 위기대응 차원의 일회성 회의로 끝날 수도 있었던 G20 정상회의를 세계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지속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파하는 데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G20이 세계경제 거버넌스로서 자리를 굳히려면 G20 밖에 있는 개도국의 관심과 이익에도 귀를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G20 아웃리치(외연확대)를 강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G20 국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유엔에서도 G20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실제 G20의 성공적인 개최로 한국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번 칸 G20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세계 각국 정상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이뤄낸 성과를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주요 인사들은 과거 APEC 등 동양 사람들이 리더십 발휘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인상을 가져서인지 처음에는 별로 기대를 안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용뿐 아니라 행사ㆍ홍보 등 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이자 이제는 한국이 기준을 너무 높게 해놓았다고들 합니다. 밖에서 보면 한국이 굉장히 돋보입니다. 미국ㆍ유럽연합(EU)ㆍ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ㆍ인도 등 세계 주요 경제국 혹은 주요 경제블록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고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역 1조달러클럽에도 가입했고 G20도 성공적으로 개최해 진짜 한국이 대단하다고들 합니다."
실제 칸 G20정상회의는 회의과정뿐 아니라 좌석배치 및 심볼 등 회의장 안팎으로 서울 G20정상회의의 양식을 그대로 썼다.
올해 세계경제 전망을 묻는 질문에 사공 회장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더블딥 우려를 일축하면서도 크게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올해는 별로 크게 좋아질 것도 없지만 더블딥에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더블딥에는 안 빠지더라도 거의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미국이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을 매우 낮게 분석하며 상대적으로 낙관론을 견지했다. 하지만 유럽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사공 회장은 "유럽 경제는 상당히 어려운데다 나라마다 이해관계도 달라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올해 세계경제가 크게 좋아질 요인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번 재정위기로 유로존이 깨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붕괴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어렵게 단일통화를 채택했지만 유로존은 재정통합이 없는 통화연합이므로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겁니다. 유럽 위기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해 12월8~9일 개최된 유럽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주도로 이뤄진 합의는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 합의를 기반으로 3월까지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나와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과거 50년간 유럽이 정치적인 의지를 가지고 통화연합을 통한 유럽의 결속을 다져왔기 때문에 지금 유럽 지도자들도 유럽통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유럽통합을 망가뜨린 실패한 지도자로 기억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럽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데 국제통화기금(IMF)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입장도 피력했다. "유럽 재정위기 해결에 IMF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유럽 재정위기 해결에 G20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G20이 집단 리더십을 발휘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IMF가 기술적인 부분을 맡는 거지요. 지난해 10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강연할 때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고통스러운 정책을 펴야 할 때는 IMF가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IMF 구제금융 지원이 필요한 위기에 처한 국가들은 경제 구조조정이 절실합니다. 자국민들의 저항 또한 상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조조정 이행이 IMF 구제금융 지원 전제조건에 포함돼 있으니 그만큼 정치적으로는 부담을 덜 수 있는 거지요. 유럽 문제 해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자면 IMF의 재원확충도 함께 고려돼야 합니다."
사공 회장은 세계경제 흐름과 맞물려 올해 우리 수출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수출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지난해처럼 20%씩 늘어나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특히 2009년 조선 분야에서 우리가 수주한 선박을 인도하는 시기가 돼 조선 분야 수출이 저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우리가 잘하고 있는 반도체ㆍLCD 등도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며 올해 수출 증가율도 하락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수출은 사상 최초로 6,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FTA 민간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 비준에 큰 힘을 실었던 그는 한중 FTA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사공 회장은 "중국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우리로서도 소극적일 필요가 없다 본다"고 말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우리에게 위협적인 요인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한미 FTA를 체결한 한국이 TPP 가입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하지만 참여국들 사이에서 풀어야 할 여러 과제가 남아 있는 만큼 TPP 논의가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FTA 반대 의견이 주를 이루는 데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내비쳤다. "협회 직원들을 뽑는 인터뷰를 할 때면 FTA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다들 전부 FTA에 찬성한다고 하지요. 그럼 실제 여러분들이 그걸 믿고 있다면 FTA에 찬성하는 글을 써본 적이 있냐고 되묻습니다. 젊은이들의 장래, 그리고 그 아들딸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데 왜 다들 남의 일같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같이 무역 비중이 높은 나라에 개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바로 우리의 장래가 달린 문제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 사공일 회장은 지난 2010년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사공일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세계적인 석학들, 국제기구 수장들 및 고위관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광범위한 인맥을 자랑하는 국제경제 무대의 마당발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사공 회장은 소탈하면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익히고 배움을 추구한다는 주변의 평을 듣고 있다. 그런 사공 회장의 국제 경제와 금융ㆍ통상 이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은 이번 인터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서울 G20에 이어 칸 정상회의에도 갔었던 요제프 아크만 도이체방크 회장도 지난해 11월 방한했을 때 두 정상회의를 아주 솔직하게 비교하더라고요." 대화 도중 사공 회장이 최근 각국의 주요 경제계 인사들과의 교류를 허심탄회하게 소개했다. 그는 현재 복잡한 국제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쾌도난마처럼 명쾌한 설명으로 풀어냈다. "유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안이 3월까지는 나와야 하는데 최근 기사들을 보면 굉장히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영국 쪽은 정서가 유럽하고는 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사공 회장의 인맥은 그의 측근조차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사공 회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경제정책 핵심 브레인이었던 로런스 서머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회의 의장, 월가 금융 개혁을 주도한 폴 볼커 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세계은행 총재,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 등과 수시로 국제경제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G20 서울 정상회의준비위원회 관계자들은 행사의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 당시 위원장이었던 사공 회장의 거미줄 같은 국제경제 및 외교 인맥이 크게 기여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이처럼 국제적인 인사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은 간단하다.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공부. 사공 회장은 그들과 만나 대화가 되려면 그들이 알고 관심 있는 것을 자신도 꿰뚫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유익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이유에서 바쁜 일과에도 외국 신문은 물론 각종 전문 저널, 신간 도서 등을 탐독하고 있다. 그가 현재 무역협회 회장으로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중소기업 무역현장 지원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ㆍ활용 등 통상환경 개선 활동이다. 사공 회장은 거시경제 전공자답지 않게 중소기업의 무역현장 지원을 세심하게 살피고 지원하는 실용적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초에는 지방중소기업 애로해결사를 자처하며 전국 12개 산업단지 공단을 직접 방문해 지역 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청취, 이를 일련번호로 매겨 지속적으로 관리할 정도로 현장 중시형 마인드의 소유자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시절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규제개혁에 나서기도 했다. 바둑과 등산을 즐기는 사공 회장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다. 무역센터 구내식당에서 젊은 직원들과의 식사를 즐긴다. 또 사공 회장이 직접 제안해 지난 연말 송년회에는 무역센터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ㆍ경비원 등을 초청해 연극을 함께 관람하며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기도 했다. ◇약력 ▦1940년 경북 군위 ▦1964년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재학중 군복무 필) ▦1966년 미 UCLA 석사 ▦1969년 미 UCLA 박사 ▦1969~1973년 미 뉴욕대학교 교수 ▦1973~1982년 KDI 재정금융실장ㆍ부원장 ▦1983~1987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1987~1988년 재무부 장관 ▦1993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2008~2009년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2009년 G20 기획조정위원회 위원장 ▦2009~2011년 G20 서울정상회의 준비위원장 ▦2009년~ 제27대 한국무역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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