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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화장' 벗겨져 취약한 속살 노출… "다시 침체 시작" 경고

■ 리먼사태 5년… 아시아 위기재발 왜 <br>미국경제 5년 만에 동력 되찾자 신흥국서 선진국으로 돈 이동<br>중국 자산거품 꺼져 자금경색… 인도·인니 등 통화·증시 폭락<br>경기 악화·정책실패 반복 땐 신흥국발 위기 몰아칠 수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 하루 전인 2008년 9월14일,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핸리 폴슨은 리먼브러더스를 영국 바클레이스에 매각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공포감에 온 몸이 떨렸다"고 훗날 회고했다. 그의 우려대로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왔다.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경제는 2009년 1ㆍ4분기 6.4%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수개월 뒤부터 경제에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같은 해 3ㆍ4분기 성장률은 3.5%로 반등했다.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글로벌 경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회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1929년대 대공황에 견줄 만한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글로벌 경제를 되살린 것은 2008년 1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를 필두로 유럽과 일본ㆍ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풀어놓은 '돈' 때문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연준,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의 총 자산은 2007년 말 4조900억달러에서 올 7월 말 현재 8조7,60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 사이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채권 등을 사들이면서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음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사상 초유의 저금리 정책과 대규모 양적완화는 금융위기로 침체에 빠진 글로벌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 경제는 확실하게 부활에 성공, 금융위기 5년 만에 세계 경기를 견인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선진국 경제가 회복 궤도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떠받쳐온 신흥국 경제에 또 다른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인위적인 양적완화 없이도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되찾게 되면서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를 축소할 태세를 갖추기 시작하자 지난 5년간 신흥국으로 대거 유입됐던 글로벌 자금이 일거에 신흥국에서 빠져나와 미국 등 선진국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으로 유입된 글로벌 자금은 총3조9,000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이면서 10% 안팎의 고성장세를 보인 중국의 경우 전세계에서 흘러들어오는 막대한 자금과 함께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당국이 집행한 4조위안 규모의 부양자금까지 더해져 돈이 넘쳐났다. 덕분에 신흥국 경제는 선진국의 침체 와중에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이는 경제구조를 개혁하거나 체질을 강화한 결과라기보다 엄청나게 늘어난 돈이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간 데 따른 결과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선진국발 유동성으로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이 누린 호황을 거대한 거품, 이른바 '버냉키 거품'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5월 벤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국의 금리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인도를 필두로 중국ㆍ인도네시아ㆍ브라질ㆍ필리핀 등 신흥 각국에서 무서운 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세계 경제의 강력한 동력이 됐던 중국 경기가 자산버블 해소를 위한 당국의 긴축정책으로 빠르게 둔화하고 핫머니와 함께 자산 거품을 유지시켜왔던 그림자금융(섀도뱅킹)에 대한 규제가 강화하자 중국의 자금경색과 경기둔화가 가시화됐다. 이 때문에 중국을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 삼아온 신흥국의 실물경제가 나빠질 조짐을 보이자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가장 급박한 상황에 놓인 인도의 경우 루피아 가치가 올해 들어 15%나 폭락하며 연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 달러당 65루피대로 진입한 상태다. 인도네시아는 루피아가 10% 가까이 급락하고 증시가 5월 버냉키 의장 발언 이후 20% 이상 폭락했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ㆍ터키 등은 제어가 안 되는 통화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경기둔화를 감수하고 금리 인상에 나섰고 인도는 외환규제를 비롯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시장 안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미 탈(脫)신흥국 기조로 바뀌어버린 글로벌 자금 흐름을 되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심상치 않은 속도의 자금유출과 정부의 통제력 상실로 패닉에 빠진 시장에서는 인도와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가 1997~1998년과 같은 위기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다.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이 실제 1997년과 같은 위기로 번질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자금 엑소더스와 경기 악화, 정책 실패가 반복된다면 글로벌 경제에 신흥국발(發) 위기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히라노 에이지 도요타 파이낸셜서비스 부사장은 "금융의 두터운 화장이 벗겨지고 경제의 속살이 드러나면서 앞으로 5년 동안 심각한 글로벌 경제 정체가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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