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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고향서 최후…리비아 내전 종식(종합)
입력2011-10-21 10:09:43
수정
2011.10.21 10:09:43
민중봉기와 뒤이은 내전으로 쫓겨나 도피 중이던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69)가 20일(이하 현지시간)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카다피는 이날 최후거점 시르테를 장악하는데 성공한 과도정부군에 밀려 42년간의 철권통치를 마무리했으며 8개월여에 걸친 내전도 사실상 종식됐다.
이에 따라 국가과도위원회(NTC)의 새 정부 구성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NTC가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이면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과도정부 “카다피 생포후 사망” = NTC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NTC 제2인자인 지브릴 총리는 오후 4시 20분(한국시각 11시20분)께 수도 트리폴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NTC 대변인 압델 하페즈 고가는 이에 앞서 “카다피가 혁명군에 체포된 후 사망했다”고 밝히면서 “이는 역사적 순간이요, 폭정과 독재의 종말”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23일 반군의 수도 트리폴리 함락을 계기로 종적을 감춘 카다피는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고향 시르테 등을 거점으로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
◇카다피 최후의 순간 = 카다피는 자신의 고향이자 최후의 은신처였던 시르테 인근에서 최후를 맞았다.
AFP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카다피는 이날 호송차량을 80대를 앞세워 반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프랑스의 전투기가 위협 폭격으로 멀리 가지는 못했고, 이어 시르테 서쪽으로부터 3㎞ 떨어진 곳에서 과도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카다피는 도망쳐 인근 하수관으로 숨었으나 곧바로 적발됐으며 이후 뒤 누군가에 의해 총을 맞았고 이송되는 도중 처참한 최후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서는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리비아의 한 행인이 촬영해 CNN 등을 통해 공개된 영상 속에서는 카다피가 피를 흘린 채 비틀거리며 트럭으로 끌려가는 도중 누군가 “그를 살려줘, 그를 살려줘!”라고 소리치고 나서 총성이 울렸다.
지브릴 NTC 총리는 트럭이 출발하려는 순간 교전이 벌어지면서 카다피가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밝혔으나 다른 소식통은 생포한 카다피를 누군가 구타하다 죽였다면서 “카다피가 저항했던 것 같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현장에 있었던 다른 병사는 발각 당시 카키색 복장에 머리에는 터번을 두르고 있던 카다피가 생포 순간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다고 전하기도 했다.
따라서 시르테 인근 하수구에서 생포된 카다피가 최후의 순간에 NTC군에 의해 살해됐는지, 혹은 양측간 교전 중에 우발적으로 총에 맞아 숨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카다피는 머리와 복부에 총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현재 그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검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카다피의 시신은 미스라타의 한 이슬람 사원에 안치됐으며 21일 이슬람 전통에 따라 미스라타에 묻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 체포설이 제기된 카다피 4남 무타심도 숨진 채 발견됐으며 아부 바크르 유니스 전 국방장관의 시신도 발견돼 모두 미스트라로 후송됐다.
◇시르테 장악…사실상 내전 종식 = 과도정부군은 카다피 세력의 마지막 집결지였던 시르테를 장악하면서 8개월여에 걸친 내전도 사실상 종식됐다.
2주 전부터 시르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한 과도정부군은 이날 북서지역에 있는 2구역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던 카다피 세력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했다. 과도정부군의 현지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며 “도주하는 카다피군을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카다피 세력이 일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심점을 잃은 상태에서 더 이상의 의미 있는 저항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브릴 총리는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의장이 늦어도 21일까지는 리비아 해방을 선언하고 카다피의 최후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 리비아 작전 종료 임박 = 카다피가 사망함에 따라 지난 3월부터 이어진 나토의 리비아 군사작전도 곧 종료될 전망이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가 “유엔 및 리비아 국가 과도위원회(NTC)와의 협조하에 작전을 종료할 것”이라며 카다피의 최후 거점인 시르테와 바니 왈리드가 함락된 만큼 작전 종료 시점도 훨씬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외교소식통은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나토군 최고 사령관이 이르면 21일 군사작전 종료 권고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토는 유엔의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 이후 3월부터 7개월간 카다피 친위군을 대상으로 약 9,600차례에 걸쳐 공습을 단행했다.
◇리비아 전역 환호 = 카다피가 최후를 맞이한 시르테는 광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수도 트리폴리를 내준 뒤 고향인 이곳에서 2개월여 항전해온 카다피의 사망 사실이 전해지자 시민군 병사들은 허공에 기관총을 쏘아대며 진정한 해방의 순간을 맞았다며 기뻐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세리머니’가 과열되자 NTC측은 확성기를 들고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카다피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으로 보이는 동영상은 현지 병사들의 휴대전화를 통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벵가지에서도 수천명의 시민이 거리로 몰려나와 기쁨의 춤을 추며 허공에 총을 쏘는 등 기쁨을 만끽했다.
◇과도정부 순항 여부 미지수 = 저항하던 카다피가 사망함에 따라 NTC의 정부 구성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재해 있는 갈등요인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카다피 이후 리비아는 민주독립국가로 국민이 주권의 원천인 국가이며 수도는 트리폴리, 국교는 이슬람,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토대로 입법 행위가 이뤄지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게 NTC의 설명이다. NTC는 카다피 이후 헌법에 따라 8개월 내로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 구성 전에 혁명의 공과를 둘러싼 지역별, 부족별 이해 다툼 등 넘어야 할 장애물이 산재해 있으며 NTC가 번번이 새 내각 구성에 실패한 것도 이같은 난맥상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카다피의 처참한 최후를 담은 사진 공개로 자극받은 카다피 지지자들의 저항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 반응 = 리비아 군사작전을 주도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진영은 ‘비아 국민에게 특별한 날’라며 카다피 사망을 한결같이 반겼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통해 카다피 사망을 확인하면서 “리비아 국민의 길고 고통스러운 장(章)이 끝났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리비아 국민에게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새 정부가 민주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카다피의 사망이 그가 40여년 동안 통치해온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전망을 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카다피군과 반군은 모두 평화적으로 무기를 내려 놓아야 한다”면서 “지금은 복수를 위한 시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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