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제조업자 듀랜트는 사고 또 샀다. 결과는 25개 완성차 업체 및 부품회사로 구성된 GM. 아직까지는 세계 1위의 자동차 회사다. 창업에는 성공했지만 듀랜트는 수성에 실패한 인물로 꼽힌다. 부채경영 탓이다. 남북전쟁 초기인 1861년 12월8일 태어난 듀랜트(William C Durant)는 고교시절 학업을 접고 친조부의 마차회사에 들어갔다. 얼마 안 지나 연간 5만대의 마차를 공급하며 시장점유율 1위로 뛰어오른 그는 말 없이 움직이는 마차에 흠뻑 빠졌다. 자동차 사업 진출방식은 인수합병(M&A). 1904년 뷰익자동차 인수를 시발로 4년 동안 사들인 25개사를 합쳐 1908년 자본금 1,200만달러의 GM을 세웠다. 헨리 포드도 한때 포드자동차를 넘기려 했을 만큼 끝없는 확장과 계열화를 추진한 듀랜트의 경영원칙은 한 가지. 최신 기술이 들어간 다양한 차종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다품종 생산과 계열화는 100년간 GM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듀랜트는 성과를 누리지 못하고 밀려났다. 부채 때문이다. GM 설립 2년 만에 쫓겨난 그는 시보레 자동차를 매입, 재기의 발판으로 삼아 1918년 GM의 최대주주 자리를 되찾았다. 복귀한 그의 경영 스타일은 똑같았다. 부품회사는 물론 트랙터와 가전제품ㆍ건설회사까지 매입했다. 끝은 개인파산. 짧고 강한 경기침체가 빚을 내 사업영역을 넓히는 그에게는 타격이었다. 지분을 듀폰그룹에 넘기고 물러난 그는 듀랜트자동차 설립, 대규모 볼링장 건설, 주식 전문투자자로 나섰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1947년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듀랜트가 뼈대를 세운 GM의 위세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과도한 복지비용과 조직 비대화로 휘청거리는 GM의 오늘에 듀랜트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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