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중앙은행이 모든 경제 문제를 책임질 수는 없다."
지난주 세계시장이 주목한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폭락하는 자국 통화(루블화) 대응 문제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러시아는 세계 4대 외환보유 대국이다. 지난해 말 쌓았던 외화표시자산이 5,000억달러에 달했다. 국내총생산의 20%대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러시아는 연초부터 이달까지 환율방어에 약 1,000억달러가량을 소진했다. 그럼에도 올해 루블화 가치가 40% 넘게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외환보유액이 위기의 진전 속도를 다소 늦춰 시간을 수개월 이상 벌어주기는 했지만 근본 처방은 될 수 없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글로벌시장이 출렁거릴 때마다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지난 11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631억달러로 세계 7위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을 맹신할 수 없음을 루블화 쇼크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에 대한 과신을 경계하고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충격을 완충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늘 안고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원화의 태환성을 높여 신흥통화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원화 태환성을 높이는 방법 중 핵심은 주요 기축통화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상시화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그렇다. 경제영토에 '달러 우산'을 씌우자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현재 미국이 통화스와프를 상설화한 나라는 영국·호주·캐나다·일본 등 극히 일부의 최우방 국가뿐이다. 따라서 미국을 설득하려면 상황과 명분, 상호이익의 3박자를 절묘하게 맞춰야 한다. 마침 미국은 '리밸런싱 아시아(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북아 우방들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화스와프로 한미 간 경제동맹을 강화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한국의 중국 밀착을 경계할 수 있고 아울러 원화의 태환성이 확보되면 미국이 오랜 기간 문제 삼던 원화가치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는 지렛대가 돼 미국의 통상이익에도 합치된다는 논리를 펴야 한다. 또 정부 및 중앙은행 간 물밑 조율이 이뤄지더라도 미국 의회가 제동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길게 보고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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