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수학자이자 의사, 사진기의 선구자며 물리학자, 그리고 도박꾼.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지몰라모 카르다노(Girolamo Cardano)의 면면이다. 이름 앞에 가끔 ‘미치광이’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이탈리아 파비아에서 1501년 태어난 그의 본업은 내과의사. 교황청과 귀족들이 앞다퉈 찾는 명의였다. 발진티푸스에 관한 임상실험을 도입하고 탈장 수술방법도 개발해냈다. 알레르기 증상 치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의사로만 머물기엔 그는 재주가 너무 많았다. 131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의학과 수학ㆍ천문학ㆍ물리학 등 학문은 물론 동정녀 마리아의 생애, 예수의 별점, 음악과 꿈의 해석, 로마황제 네로의 인간성 등 온갖 영역을 넘나들었다. 최대 업적은 수학 분야에서 남겼다. 타르탈리아의 학문적 성과를 훔쳤다는 논란도 있지만 그가 발표한 3차 방정식 해법은 ‘카르다노의 공식’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도박에 관한 저서인 ‘운수에 맡기는 승부’는 근대 확률과 통계론의 시초로 꼽힌다. 명성에 힘입어 파도바 시장까지 지냈지만 개인사는 극히 불행했다. 큰 아들은 아내 살인죄로 사형 당하고 둘째 아들은 여덟 차례나 감옥을 들락거렸다. 수학자로 이름을 날린 양자 페라리도 여자 관계 때문에 독살됐다. 자신의 삶도 자살로 마쳤다. 점성술에 따라 죽는 날이라고 예언한 1576년 9월21일, 몸에 변화가 없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뛰어난 수학실력을 평생토록 도박에 쏟았던 그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을까. 카르다노를 리스크 관리의 시발점으로 본 경제분석가 피터 번스타인은 이런 평가를 내렸다. “카르다노는 ‘도박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 이윤은 도박을 전혀 하지 않을 때와 같다’고 결론짓기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잃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