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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전자책, 시대의 대전환 예고


지난주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구글의 전자책 서비스가 한국에서 시작됐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퍼져가고 있는 '책의 전자화'라는 파도가 결국 우리나라 해안가까지 밀려온 느낌이 든다. 현대문명의 무게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프린트 문화의 시대가 힘을 잃고 스크린 문화의 시대가 본격화됐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인류 문명 초창기에 나타난 오럴(oral) 문화의 시대에는 모든 행위가 구어(口語)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은 거의 말을 통해 이뤄졌다. 동양의 제자백가나 서양의 소피스트처럼 말하고 듣고 재치 있게 반응하는 능력, 즉 논변력 좋은 사람이 현자로 추앙돼 등용됐으며 고급 지식을 전하고 첨단문화를 만드는 비법은 구술로 이어지고 몸으로 체득됐다. 상업 활동을 지배한 것도 말이었다. 행상이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물건을 팔았는데 오늘날 장터의 물건들처럼 문자와 결합한 상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말로써 밀고 당기는 흥정과 담판이 교환의 중심에 있을 뿐이었다.

프린트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모든 규칙이 바뀐다. 구텐베르크 혁명 이후, 모든 행위는 점차 문자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종이에서 피륙이나 건물에 이르는 모든 곳에 문자가 새겨진다.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인간됨의 근거를 이루고 종이 위에서 행해지는 각종 시험이 생겨나서 문해력(文解力)을 측정한다. 책과 신문과 도서관이 미디어의 핵심을 이뤄 문명의 모든 것을 이어준다. 상업 활동의 중심에 문자가 들어선다. 계약이 흥정을 대체하고 상품명에서 가격에 이르는 표시가 물건과 결합돼 노출된다. 대형마트에 가보라. 입구에 전단지가 배부되고 온갖 팝업 패널들이 상품을 분류하고 할인을 외치면서 소비자를 유혹한다. 읽기 없이는 쇼핑도 없다.



이제 스크린은 일상 그 자체가 된다. 우린 말하는 대신 카톡이나 문자를 한다. 수다 대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지도 대신 네비게이션을 보고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레인지를 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스크린이 있다. 지식은 스크린 속의 삶을 이해하고 스크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능력으로 바뀐다. 전자상거래가 일반화했듯 상업 활동의 중심에도 스크린이 놓인다. 오늘날 혁신은 대부분 기존 상품이나 서비스를 스크린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생겨난다. 그리고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서 보듯이, 스크린을 둘러싼 새로운 규칙(사용자 인터페이스)이 마련될 때까지 길고 지루한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우리는 스크린이 모든 곳을 파고드는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책이 전자책이 된 것은 중요한 상징이자 그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환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이제 미래를 생각하는 모든 이들의 중요한 책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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