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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김명민 '내가 본 피카소전'

자유롭고 맑은 예술혼에 감명<br>피카소의 여인들·시대별 그림배열 전시회 재미 더해

19일 ‘피카소’ 전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 찾은 탤런트 김명민 씨가‘회색빛 꽃여인’ (1946년작) 그림 앞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박철중기자

나는 사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34년을 사는 동안 미술 전람회 방문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화법이라든가 필치, 그림의 역사적 의미 등도 내겐 생소하기 만한 용어들이다. 추상파, 입체파 등 화풍에 대한 분류에 대한 이해도 거의 전무하다. 그러나 피카소는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많은 교육을 받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각종 매스컴이나 서적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접했기에 익숙한 인물이었다. 한국에서 피카소의 그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소식에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어떻게 보면 위대한 화가의 명성이 나를 이끌었던 셈이다. 처음엔 그저 죽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피카소 노년기의 사진들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90세 나이의 피카소였지만 강렬한 눈빛 등 혈기왕성한 모습은 나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지니게 했고 그림들에 발길이 머무는 시간을 길게 했다.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그림은 청년기 작품인 ‘솔레르씨 가족’이었다. 피카소하면 우선 이해하기 힘든 형이상학적인 그림이 떠오르곤 하지만 ‘솔레르씨 가족’은 사실적인 그림이다. 청년시절의 패기를 청색에 담은 듯 시원한 힘이 느껴져 가슴마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피카소의 그림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내 선입견이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반성도 느껴졌다. 전시회의 그림 배열 순서가 시대별로 시간의 흐름을 쫓는 동시에 피카소의 창작에 영향을 끼친 여인들과 연관 지어진 점은 전시회를 한층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요소였다. 피카소의 작품들엔 거의 빠지지 않고 여인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피카소의 부인 또는 연인이었다. 피카소는 이들에 대한 감정을 고스란히 그림에 반영한 듯 느껴졌다. ‘우는 여인’ ‘거울 앞에서 잠자는 여인’ ‘도라 마르, 뒤집힌 얼굴’ ‘앉아 있는 여인’ 등의 작품 속에 담긴 여인들의 모습은 추상화이기에 아름다움과 추함을 논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사랑, 증오, 질투, 좌절 등의 감정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2차대전 기간 동안 창작한 ‘우는 여인’ ‘게르니카’ 등의 작품속 여인의 모습은 완전히 일그러진 괴물의 모습이었다. 험난하고 암울했던 시대상을 그림에 반영했다고 할까. 이혼을 해주지 않아 속을 썩인 첫번째 부인 올가의 모습이 추녀로 묘사된 점 또한 감정에 솔직한 피카소의 화풍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작가의 감정이입을 느끼자 그림에 대한 재미도 한층 커져갔다. 피카소를 감상하면서 또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그림의 대상이 존재함에도 원근법에 얽매이지 않았다. 대상의 크기와 위치는 피카소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려진 듯했다.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으로 얽매이지 않는 작품세계를 추구한 점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왕성한 창작을 보여준 점 또한 감명 깊었다. 이미 당대 최고의 화가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을 텐데 피카소는 오히려 더 열심히 작품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노년이 될수록 그림에서 느껴지는 힘이 강렬해지는 점은 전율을 느끼게 했다. 연기자로서 활동하는 내게는 큰 귀감이 됐고 자세와 각오를 다잡도록 다그치는 교훈이 되기도 했다. 전시회 말미에서 볼 수 있는 피카소의 어구 2개는 내 평생 간직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일상의 먼지로부터 씻어준다’와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글귀다. 피카소는 그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거장의 명예를 누리면서 계속해서 순수해져 갔다. 영혼을 맑게 하며 작품세계를 더욱 순수하게 가꿔간 것이다. 대중 문화인의 한 사람으로 이보다 더 깊은 감명과 교훈을 줄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나는 그저 거장 화가의 그림을 보겠다는 지적 허영심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처음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러나 그림 하나 하나를 보면서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너무나 많은 감명과 교훈이 가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일 터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피카소가 평생 추구한 맑은 영혼을 나 역시도 추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 역시 인기가 높아지고 부와 명예를 얻은 뒤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활동할 수 있을까.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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