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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모방은 때로 더 큰 가치로 다시 태어난다. 예술에서는 단순히 베낀다는 뜻의 표절과는 달리 '차용(借用ㆍappropriation)'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미술에서는 '팝아트(Pop Art)'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팝아트는 광고디자인, 만화, 사진, TV영상 등을 주제로 삼아 그린 현대미술 양식의 하나. 팝아트에서 차용은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이 같은 재해석은 현대사회에 대한 작가적 목소리를 반영했다. 모네(Claude Monetㆍ1840~1926)와 앤디 워홀(Andy Warholㆍ1928~1987)을 차용해 팝아트의 지평을 넓힌 거장들의 전시가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한창이다.
◇리히텐슈타인, 모네의 '수련'을 재해석=국내에서는 비자금 파문에 연루됐던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ㆍ1923~1997)은 초기 만화 인쇄에서 볼 수 있는 '망점'을 이용한 조형적 단순화를 보여준 작가다. 주로 대중문화 속 인물 이미지나 현대식 주거공간의 풍경으로 친숙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이 모네의 '수련'을 차용한 연작 8점을 선보였다. 모네가 빛의 점으로 표현했다면 리히텐슈타인은 숱한 망점들로 형태를 재구성하고 화면 곳곳에 스테인레스스틸을 붙여 물의 느낌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기발함이 돋보인다. 전시기획자인 이장은 큐레이터는 "서정성으로 대표되는 모네의 작품이 기하학적이며 인공적인 화면으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차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지니는 작품들"이라며 "대량생산이 미덕처럼 여겨지던 격변기의 작가가 대중문화와 고급미술(Fine Art)의 관계를 고민해 온 흔적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가는 2억원에서 10억5,000만원 선이며, 이달 초 열린 KIAF에는 12억원짜리 작품도 출품된 바 있다.
◇페티본, 앤디 워홀 모방으로 미술사에 도전장=1962년, 20대 초반의 리차드 페티본(Richard Pettiboneㆍ74)은 워홀의 첫 개인전에서 팝아트를 처음 접했다. 기존 명작이나 매스미디어와 대량생산 제품들의 이미지를 '차용과 복제'한 1960년대의 팝아트는 당시 "예술도 아니다"는 비난을 감수하던 중이었다. 이에 페티본은 미술사가 중시하는 원본성(Originality)에 대해 의문을 갖고, 더욱 적극적인 차용으로 반항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1980년대 차용예술 분야에서 '복제의 복제'를 시도한 개척자로 자리 잡았다. 팝아트가 고급문화와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으나 결국 고급문화 못지 않은 권력과 가격대를 형성한 것을 지적하며 앞 세대 거장들의 작품을 대폭 줄여 정교하게 복제했다. 이번 전시에는 '꽃''재키''캠벨수프 깡통' 등 워홀의 대표작들을 어른 손 한 뼘 크기 내외로 축소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작지만 본래의 진실성을 간직한 내 작품에 담긴 개념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고 되묻는다. 작가 명성에 비해 작품가는 1,000만원부터 5,000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10월14일까지. (02)7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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