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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지름길은 없다

김용배<예술의 전당 사장>

어느 날 두 여인이 한 아이를 솔로몬에게 데리고 와 서로 자신의 아이라 주장한다. 솔로몬은 그들에게 아이를 둘로 나눠 반씩 가지라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자신이 양보하겠다며 아이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청하고 솔로몬은 그녀에게 아이를 주도록 명령한다. 이 세상에 자기 아이를 반으로 나눌 잔인한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이 사건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으로 유명하지만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을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의 어수룩한 내리사랑 또한 아직 어리기만 한 두 딸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들이 이 험한 세상 풍파에 시달리지 않고 곱게 잘 자라주길 바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며 거친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선인장처럼 굳세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란스럽다. 마치 운전을 배우고자 하는 이가 그 편안함을 생각하다가도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차라리 운전을 배우지 말까 하고 망설이는 것과 다를 바 없으리라. 하지만 아버지의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오늘도 아이들은 울고 웃으며 자신들의 삶을 하나하나 채워나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필자는 어쩌면 부모라는 이들은 단순히 인생을 조금 먼저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쉽고 편안한 지름길만 알려주려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어릴 적 인생의 갈림길에 서서 오래도록 고민하며 보낸 세월이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닐진대. 부모들의 지름길을 향한 조급증은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의 말을 빌리면 아직은 어리기만 한 아이를 데리고 와 자신의 아이가 음악적인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비싼 학원비를 들여가며 피아노 공부를 시킬 만한 영재인지 아닌지 봐달라며 후배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퍽이나 많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하늘이 내린 천재 모차르트나 음악사에 빛나는 몇몇 신동을 눈앞에 데려온다면 모를까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이 빚어내는 어설픈 음악을 듣고 그의 영특함에 미리 감동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난감하다고 한다. 하긴 즐거운 어린시절을 보내고 힘겨운 사춘기를 지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은 후에도 드러날까 말까 하는 음악성을 귀신이나 점쟁이가 아닌 바에야 어찌 알겠는가. 어찌 보면 요즘 부모들은 과거의 부모들에 비해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애초에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설사 자식이라 할지라도 투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당한 논리다. 요즘처럼 자식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 현실이고 보면 이것저것에 소모적인 지출을 하느니 차라리 뚜렷한 한 가지에 확실하게 투자하자는 경제논리가 합당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고난 소질과는 상관없이 아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노파심이 든다. 타고난 영재는 아닐지라도 건반을 두드리며 한음한음 익혀나가고 의자 위에서 겨우 달랑거리던 다리가 어느새 피아노 높이만큼 자라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때까지 아이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우직한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 뒤쳐지는 것일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지름길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미래가 그보다 더 편하고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를 원한다면 맨발로 가시밭 길도 걸어보고 벼랑에서 떨어져보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을 다 얻은 행복에 빠져보기도 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나만의 길을 헤쳐나가 자신의 삶을 찾는 것 또한 멋질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직장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사람이 불과 20%도 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하루는 어떨까. 아니 정말로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누가 그들에게 하기 싫은 일을 떠맡긴 것일까. 오늘 밤, 필자는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든 두 딸아이의 고단함에 기대어 속삭인다. 행여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려 하지는 않았는지, 아니 필요 이상으로 아이의 짐을 나눠 들고자 애쓴 것은 아닌지. 이제 지름길을 향해 쌓아올렸던 울타리를 허물고 아이들을 벌판으로 내몰아 마음껏 고생하게(?)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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