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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는 우리시대를 비틀다

재미 현대미술가 코디 최 개인전<br>'이민자이자 이방인'의 눈으로<br>서구지향적·다문화 공존하는 한국인들의 가치충돌 꼬집어


여성의 흩날리는 금발을 그린 '선물'(The Gift).

하트모양의 작품 '무화(無化)된 의식' (Zero-Consciousness).

우리의 뇌가 '색깔있는 글자'를 읽을 때 우뇌는 색을 인식하고 좌뇌는 글자를 인지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이 같은 '뇌와 마음의 분별'에 의문을 품은 개념주의 미술가 코디 최(한국명 최현주ㆍ50)는 녹색으로 RED(빨강), 빨간색으로 GREEN(초록)이라고 겹쳐 적었다. 글자의 의미와 색을 왜곡시킨 조작에 뇌는 일시적 마비증상을 보인다. 이 작품 '착란 유발자(Delirium Trigger)'를 통해 작가는 뇌가 헷갈리는 순간을 오히려 마음으로 글자와 색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2007년에 만든 이 작품은 세계적인 명품브랜드 콜롬보의 러브콜을 받아 한정판 아트상품으로도 출시됐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중인 현대미술가이자 문화이론가인 코디 최가 5년만의 개인전을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전시제목은 '후기식민주의의 두 번째 장(2nd Chapter of Post-colonialism)'. 고려대 사회학과 재학 중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가 미국 속 동양인으로 살아온 작가가 1986년 작가 데뷔 때부터 꾸준히 질문을 던져 온 '이방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의 연장선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인 여성의 흩날리는 금발을 그린 대작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벽에 기대 서 있는 이 그림의 좌대(座臺ㆍ받침대)는 사인펜으로 조잡하게 나이키로고를 그린 아동용 흰 운동화다. "서구화 된 미적 기준이 한국사회는 물론 아이들까지 점령했다"며 모방문화를 비꼬아 표현한 것. 제목은 프랑스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1872~1950)의 '증여론'을 상기시키는 '선물(The Gift)'이다. 이민자이자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봐 온 작가는 어느덧 고국에서도 이방인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엔 '이중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문화를 바라봤다. 찌그러진 하트모양의 작품 '무화(無化)된 의식(Zero-Consciousness)' 시리즈는 젊은이들이 즐겨보는 잡지에서 잘라낸 이미지를 콜라주 한 것. "내가 누구냐는 자아의식은 없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는 타인의 평가에 집착해 살아가는 이 시대 한국인의 모습"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신작 '극동의 왜곡'은 동양 고전인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구절에서 시작됐다. 한문으로 된 책 내용을 작가가 나름대로 해석한 뒤 이를 영어로 번역해 소리나는 대로 쓴 것이다. '노스마트 노화이팅'은 덕충부편(德充符篇)에 나오는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작가가 '무식하면 싸울 일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 결과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왜 이름이 코디최인가'라며 궁금해 한다. 낯선 그의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이민초기 받은 의무 영어교육 시간에 '버팔로 빌 코디'라는 책을 지정 받고 발표를 맡은 그에게 선생님이 "네 이름은 이제부터 코디(Cody)"라고 말했다고. 그 후로 작가는 미국에서는 사냥꾼과 들소를 떠올리게 하고, 한국에서는 스타일리스트를 연상시키는 그 웃지 못할 이름을 고집스럽게 쓰고 있다. 문화적 소통과 정체성을 강조하고 또 자극하는 작품들, 서구지향적인 동시에 다문화 하는 현대사회의 가치 충돌을 꼬집는 코디 최의 작품은 그의 이름 그의 삶과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전시는 5월14일까지. (02)515-9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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