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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여성 두번 울리는 '나쁜 남자들'

피해자 특수성 악용해 "건드려도 괜찮더라" 정보공유까지<br>법도 모호해 재판서 무죄 선고 많아… 보호시설은 3곳 뿐


지적 장애가 있는 A(19)양은 4월부터 두 달간 서울 관악구 봉천동 모 아파트 옥상으로 끌려가 이 옥상에서 노숙하던 백모(59)씨에게 다섯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백씨는 본인도 2급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더한 약자인 A양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인근 교회의 한 목사가 A양이 오랫동안 여러 사람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눈치채고 신고해 조사가 시작됐지만 A양이 백씨 외의 다른 가해자들의 신상이나 구체적인 피해상황을 기억하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일 백씨를 구속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청주에서 정신지체 3급인 C(17)양을 성폭행하고 이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한 30대 남성 2명이 구속됐고, 충남 공주에서는 무려 2년간 지적 장애를 가진 B(15)양을 성폭행한 마을 주민 6명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전국 장애인 성폭력 피해 상담소에 접수된 상담건수는 2006년 480건에서 2009년 1,177건으로 급증했다. 이중 약 60%가 지적 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피해다. 하지만 쉬쉬하거나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경찰 신고 건수는 2007년 194건, 2008년 155건, 2009년 137건으로 줄고 있다.

민병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서울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은 "지적 장애인들이 대부분 특정한 보호시설 없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가해자끼리 '걔는 건드려도 괜찮더라'는 정보를 공유하는 수준으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적 장애인들이 성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예방대책은커녕 사후 수사 및 재판과정에 피해자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재승)은 지난해 9월 25일 정신지체 2급인 D양(당시 14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모두 세 차례 성폭행해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끌려가고 있던 피해자가 배가 고프다며 컵라면을 사달라고 한 점을 근거로 "강제로 끌려가고 있었던 상황임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아동행동진술분석 전문가가 피해자 D양 진술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 소장은 "지능지수 40, 약 7세 정도로 판단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피해자에게 왜 도망가지 않고 배고프다고 했냐, 왜 대답을 다르게 하냐 등의 질문을 하는 재판부를 보면 장애 특성에 대한 고려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관련법 조항도 모호하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피해자가 장애로 '항거불능'상태였다면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 하더라도 강간으로 본다. 하지만 이 '항거불능'상태에 대한 해석이 자의적이다. 실제 2004년 9월 16일 부산고법 형사2부(부장 윤재윤)가 정신지체 2급인 E양을 4년간 여덟 차례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킨 김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가 지적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초등학생의 지적 능력이라면 성적 자기방어 능력이 있다고 봐야 하며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2007년 유죄 취지로 부산고법에 이 사건을 되돌려 보내고 나서야 김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장애여성 인권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의 황지성 성폭력상담소장은 "이런 자의적 판단이 계속되는 한 저항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장애인만을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하는 판결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며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장애인의 특수성을 적극 고려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열악한 환경에서 범죄에 노출됐던 피해자들이 사후 또 다시 방치된다는 것도 문제다. 여성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부산, 광주, 청주 등 전국적으로 3군데에 불과하고 이들은 각각 10~15명 만을 수용할 수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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