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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생의 노사문화 만들자
입력2004-05-30 15:34:32
수정
2004.05.30 15:34:32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난 이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재계가 정부와 노동계를 상대로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현명한 선택도 아니다. 임단협을 앞두고 노사가 기세싸움을 하는 것으로 보아 넘길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재계가 우려하듯이 매우 비상한 시기이기 때문에 투쟁의 분위기를 조성하기보다는 조그만한 타협의 실마리라도 찾아내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구나 재계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법적인 책임은 다했는지 모르나 사회적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반기업 정서와 투쟁적인 노사문화가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영투명성의 제고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경제선진화의 전제조건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더구나 반기업 정서와 전투적인 노조는 경영투명성이나 기업지배구조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문제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외면한 채 법과 원칙의 엄정한 집행만으로 노사관계를 선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재계의 믿음은 현실화되기 어렵다.
한국 노사관계의 근원적인 문제는 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불신과 이로 인한 대립과 갈등의 경험이 너무 오래 축적돼왔다는 데 있다. 이 실패의 경험과 갈등의 경험, 그리고 불신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대화하고 작은 타협을 축적해가는 길밖에 없다.
노사간 대화가 쉽고 간단한 일 같아 보이지만 한국의 노사관계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경총 회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이 단둘이 만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고 만남 그 자체가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힘든 일이다.
임단협을 앞두고도 서로 만나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경제5단체장은 공동성명으로, 경총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노동계의 여러 요구들이 현실성이 없으며 오히려 비생산적인 노사갈등만을 고조시킬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노동계가 정규직은 선이고 비정규직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로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동계가 천명한 6월 투쟁 방침에 대한 대응일 뿐이라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지만 이러한 투쟁적이고 비타협적인 기세싸움을 통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형태의 입씨름으로는 결코 투쟁적인 노사문화를 불식시킬 수 없을 것이다.
길은 오직 하나라고 생각한다. 노사가 제대로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우선 쉽게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재계대표(5대 재벌회장과 경제단체장)와 정치지도자 그리고 노동단체 대표가 함께 만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사과하고 윤리경영을 약속하면서 노동계의 협력을 부탁하는 일이다. 노동계도 불필요한 파업을 자제하고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여러 요구사항을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노사단체가 진심을 담아 이 같은 약속을 국민 앞에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대타협이다. 이러한 대타협을 통해 투쟁적인 노사문화를 상생과 타협의 노사관계로 큰 흐름을 바꿔나갈 수 있다.
또한 대타협의 정신에 기초해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 문제나 경영권 안정 문제 등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를 모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미래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이뤄질 때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노사간의 쟁점에 대해서도 공동의 해법을 사회협약으로 구체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화하고 합의하는 문화가 축적돼 있지 않고 노사간의 요구 수준에 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노사가 기세싸움에 열중하고 소모적인 논쟁만을 일삼는 것은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한국의 노사는 어차피 어느 한쪽이 굴복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그러니 서로의 힘을 인정하고 자신의 약점을 감안하면서 타협해야 한다. 인정하고 타협할 때만이 전투적인 노조도 합리적인 노조로 발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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