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임신 중 과로로 숨진 여군 장교를 순직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임신부의 과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 이신애 중위는 사망 한 달 전인 1월에만 50시간이 넘는 초과 근무를 하는 등 과로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우리나라 여성은 취업할 때는 차별과 싸우다 일할 때는 임신과 출산, 양육까지 병행하느라 건강을 위협 받고 또 많은 이들은 일터에서 내쫓기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임신부의 근로시간 단축 등을 담은 여성의 일ㆍ가정 양립 지원 법안들이 발의돼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최근 여야 대립에 따른 국회 파행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25일 국회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여성 보호 법안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 대부분은 방향성에 대해 여야가 합의했기 때문에 본회의에만 올라가면 바로 통과돼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6월 국회에서는 여야가 여러 법안들의 처리 순서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여성 관련 법안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고 9월에도 식물국회가 이어지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민현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유산 위험이 높은 임신 12주 이내와 조산 위험이 큰 임신 36주 이후 여성 근로자의 1일 근로시간을 2시간 단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8월27일 발의돼 벌써 13개월째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이 법이 보다 일찍 발효돼 임신 여성의 과로에 대한 경각심을 전 사회적으로 일깨워줬다면 올 초 여군 장교의 죽음을 막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현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자녀의 나이를 현재 만 6세 이하에서 만 9세 이하로 상향 조정한 것이 핵심이다. 현실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저학년 시기까지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영시켰다. 아울러 같은 법 개정안 중 여성 고용률을 늘리기 위해 여성 채용 실적이 나쁜 기업에 정부가 시정을 요구하는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실효성 강화 방안도 주요 여성 고용 대책으로 꼽힌다. 이 개정안은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에 따르지 않는 기업의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기업들이 따르도록 하는 것으로 여야 모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개정안들 역시 국회 상임위에서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이밖에 배우자(아빠)의 출산휴가를 현재 5일에서 30일로 늘리고 육아휴직을 여러 번에 걸쳐 나눠 쓰게 하는 등 여러 법 개정안들이 발의돼 일하는 여성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일ㆍ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법안들은 고용률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이른 시일 내 국회가 정상화돼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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