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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00만원을 내고 사는 직장인 박모(37)씨는 월셋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의 경우 내년 초 계약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시세가 4,000만원가량 올랐다며 보증금이나 월세를 그에 맞춰 좀 더 올려야 될 것 같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주변 지인들의 사례를 들어봐도 막상 실제로 월세 부담이 예전보다 낮아진 경우는 없었다. 박씨는 "계약을 새로 할 때마다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주거비 부담은 더 늘어나고 있는데 월셋값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누구를 기준으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월세시대로의 전환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월셋값이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지만 실상 전세값이 오르는 한 월세도 안정화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임대차시장이 전세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터라 월세값도 전세와 연동돼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 드러나는 전세난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월세시대로의 안정적인 전환도 힘들어진다고 조언한다.
◇월세 부담 늘어나는데 정부는 '월셋값 떨어진다' 딴소리=정부는 현재 임대차시장에 대해 '전셋값 상승-월셋값 하락'으로 진단하고 있다. 실제로 전세에서 월세로 돌렸을 때 적용하는 이율인 전월세전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은 맞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3·4분기 조사를 시작했을 때 7.8%가 나온 후 △4·4분기 7.6% △올해 1·4분기 7.7% △2·4분기 7.3% △3·4분기 7.2%로 떨어지고 있다. 1년 만에 0.6%포인트가 내려간 셈이다.
하지만 전월세전환율이 하락하는 것은 저금리 기조와 월세 공급 증가에 따른 것이지 실제 월세 부담이 줄어드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예컨대 전세가가 1억원인 아파트에 월세보증금 1,000만원과 월세 40만원으로 거주한다면 전월세전환율은 5.3%다. 하지만 전셋값 1억5,000만원인 아파트에 보증금 1,000만원과 월세 60만원으로 전세가와 월세 모두 높아지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전월세전환율은 오히려 5.1%로 낮아진다.
전문가들은 월세의 경우 월세시장 자체의 경합으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셋값에 연동돼 움직이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전셋값이 오르면 그 보증금만큼 월셋값도 함께 오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일종의 착시효과"라며 "임대료 지불은 전세를 기준으로 보증금 중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형식이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이 오르는 한 월세 부담액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세난 못 잡으면 월세시대도 없어=결국 전세와 월세가 서로 연계돼 떨어지지 않는 임대차구조인 만큼 월세시대로의 안정적인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세난부터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 전세난 해결이 중심에 놓인 적은 없다.
일단 지금까지 정부 전세 대책의 중심은 매매를 활성화시켜 전세까지 해결하겠다는 기조였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각각 70%, 60%로 완화시켜 대출을 통해 무주택자들의 주택 구매를 유도한 '7·24 부동산 대책'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올해 주택거래가 90만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정도면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 2007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라며 "거래시장이 정상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전세시장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이미 두 부분이 단절돼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을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 대책인 '10·30 전월세 대책' 역시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중산층·아파트 중심의 전세난보다는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액을 낮추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에서 내놓은 임대주택 숫자를 늘리는 방안도 맞고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완화시키는 방안도 맞는 방향이지만 지금 당장 전세난을 잡을 해법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며 "민간 임대사업자들에게 혜택을 늘리는 방안과 같은 당장의 전세난에 대응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거비 부담 완화 방안 자체도 대부분 단기 처방에 그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준비생 등 취약계층에게 실시하는 월세 대출은 그 대상이 7,000여명에 그치며 민간 10년공공임대 건설자금 지원은 내년 한 해 동안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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