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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자살의 경제학

권호우 <경제부 차장>

지난 48년 일본 도쿄. 현직 법무차관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생활고 때문이다.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자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 패전국의 차관 봉급은 점령군인 미군 상병의 그것보다 적었다. 그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가져왔다. 정부의 고위관리도 어렵게 생활하기란 마찬가지며 ‘자존심’은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천문학적인 국가예산을 들여야 가능했던 ‘경제적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일본은 더 이상 ‘자살의 왕국’이 아니다. 한국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부산시장에서 대우건설 사장, 국민연금 이장을 지낸 도지사가 목을 매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한국과 일본의 자살에는 섬뜩한 공통점이 나온다. 죽음으로써 모든 걸 털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차 때문일까. 시간보다 더한 간극이 존재한다. 정치적 악용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자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과 같은 경제적 효과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정치적ㆍ사회적 갈등만 증폭됐을 뿐이다. 그런데도 유명 인사들의 자살이 꼬리를 문다는 점은 우리 사회 상부구조의 인식이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말해준다. 지도층의 인식과 행태가 사회발전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얘기다. ‘자살 하나면 모든 게 잊혀지고 용서된다는 동양적 암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좋든 싫든 사회구조는 날로 투명해지게 돼 있다. 극단적 선택이 자리잡을 여지도 없다. 자살은 곧 사회적 모순 구조의 표출이며 해악이다. 주군에 대한 충성과 수절을 위한 자살을 미화하는 동양적 정서와 달리 서구에서는 자살 자체를 금기시한다. ‘신성모독’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사회와 시장의 시스템은 날로 서구화하는데 지도층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자살 릴레이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잘못을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에 해를 끼치는 반칙은 철저하게 추궁받고 죄과를 치러야 한다. 경제를 위해서다. 자살을 대충 덮고 넘어가는 도구가 된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경제를 위한다면 더 이상 자살은 안된다. /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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