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 세력들이 지난 2일과 9일 이틀 동안 10억달러 상당의 달러화를 방출한 것으로 추정됐다. 연초부터 국내 외환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 치고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지만 공략 타이밍이 워낙 절묘했다는 분석이다. 사실 역외 거래자들은 지난해 12월 중순, 즉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부터 달러화 매도를 시작해왔다. 당시에는 연말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려져 있던 달러가치 급락은 이달 3일 FOMC 의사록이 공개되면서 더욱 파괴력을 갖게 됐다. 조만간 미국이 금리인상을 종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공공연해지자 역외 세력들이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매도공세를 폈다. 역외가 선공(先攻)을 치자 세자릿수 환율에 불안해하던 국내 세력들이 ‘묻지마 매도’에 합류했다. 그 결과 서울 장이 서기 전에 NDF 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이미 세자릿수로 내려앉았으며 서울 외환시장에서 국내 은행들의 잇따른 달러투매에 환율은 외환위기 수준까지 급락했다. 문제는 역외 움직임에 국내 외환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현재 싱가포르ㆍ홍콩 등 해외에서 거래되는 NDF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25억2,000만달러. 2004년 말(17억1,000만달러)에 비해 크게 증가했고 NDF 거래규모와 원ㆍ달러 환율 변동성과의 상관계수가 지난해 0.39에서 올해 중 0.45로 상승했다. 이 같은 양상은 올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올들어 10일까지 7영업일 동안 국내 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오름세로 출발한 것은 이틀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모두 하락했다. 뉴욕 NDF 시장 역시 원ㆍ달러 1개월물이 이틀만 상승세를 보였다. 6일 원ㆍ달러 환율이 7원70전 오른 995원에서 출발해 990원선을 단숨에 회복했을 때는 전날 뉴욕 NDF 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의 1개월물 종가인 995원50전과 50전밖에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강지영 외환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시차로 인해 뉴욕환시, 뉴욕 NDF 시장, 서울환시가 모두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역외 세력들이 갖고 있는 실탄에 비해 과대 평가를 받으며 국내 외환시장이 뉴욕 NDF 시장의 복사판과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원화뿐 아니라 엔화 등 다른 아시아 통화들도 역외의 공략대상에 포함돼 있다. 도쿄 시장이 휴무였던 지난 9일 미국의 고용지표가 예상 외로 부진하게 나오자 엔ㆍ달러 환율은 심리적 지지선인 114엔대가 붕괴되며 불안양상을 보이고 있다. 투기세력들이 엔캐리 트레이드와 관련된 차익실현 물량을 내놓았다는 루머에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가 위축되더니 미국계 투자은행들의 손절매물이 쏟아지면서 한때 113엔까지 곤두박질쳤다. 외환 당국자들은 지나친 역외 동조화 현상에 상당한 우려를 보이고 있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헤지펀드와 은행권의 포지셔닝 조정으로 환율급락이 지속되고 있지만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손실을 키울 수 있다”며 “소나기가 퍼부을 때는 관망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자본거래 자유화가 확대되면 자본의 유출입이 빈번해지고 외국인들의 원화차입도 보다 자유로워져 역외 거래자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들과 은행권에 일방적인 관망세를 강요하기도 힘든 실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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