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의회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후진성을 벗고 현대화될 수 있도록 개혁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지속된 의회 연설에서 "과거 소비에트 시절 영광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며 러시아를 둘러싼 각종 현안을 조목조목 언급, 새로운 개혁 세대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는 대부분 신흥국가들의 경제 여건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좀처럼 위기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국 상황에 대해 대응책을 내놓고자 한 데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우선 "러시아가 과거 소비에트 시대 영화를 가져다 줬던 자원산업 및 각종 중공업 의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정보기술(IT), 통신, 우주개발 등 신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의 명성과 부는 과거의 성취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며 "이것들이 되려 나라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고 현대화된 강국을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고 새로운 개혁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그는 또한 이번 연설에서 지방선거제도 개혁, 국영기업 민영화 등과 더불어 현재 무려 11개에 달하는 표준 시간대를 줄이는 작업 및 에너지 효율도가 높은 전구 사용책 등까지 세세히 언급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이번 연설이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연설은 여전히 기술적인 수준에 그쳤다는 지적도 동시에 받고 있다. 현대화 요구가 연설의 핵심이지만 실질적인 경제 선진화 정책 등에 관해 제대로 된 비전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40대 '젊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샤 리프먼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정치분야 애널리스트는 "그는 단순한 연설 이상으로 잠재적인 동지 및 지지자들에게 강한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한편 이번 연설에서는 러시아의 외환 상황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제 위기 이래 자원 가격이 하락하면서 심각한 환가치 저하를 겪었던 러시아는 현재 고금리 통화를 활용해 차익을 남기려는 캐리 트레이드 세력이 몰려들며 환가치가 폭등, 새로운 버블 가능성으로 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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