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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내가 만드는 기적

전형선<에르메스코리아 대표>

막상 좋은 일이 없더라도 누구나 기다려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로마에서는 12월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고 월6일을 동방박사가 예수를 방문한 날로 기념했다. 그래서 기독교가 근간이 되는 서양에서는 12월25일부터 1월6일을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부른다고 들었다. 크리스마스가 기독교인들에게는 당연히 커다란 축제일 테고 종교를 떠나서 생각해도 이제는 크리스마스 없는 연말, 크리스마스 없는 겨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절임에는 틀림없다. 가지가지 아름다운 장식들로 꾸며진 크리스마스트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얗게 소복이 쌓인 눈, 썰매를 타고 오는 산타클로스,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인 선물 꾸러미…. 이런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일수도 있겠고 메마른 현실에서 꿀 수 있는 꿈, 혹은 사는 게 고달픈 사람들이 은근히 바라는 기적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수많은 크리스마스의 심벌 중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어른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산타클로스의 유래를 찾아보면 4세기 초 소아시아에 있던 리키아의 수도 미라의 주교였는데 후에 그리스 정교회에서 상인ㆍ어린이ㆍ학생ㆍ여행자 등 다방면의 수호성인이 돼 대중적인 숭배를 받게 됐다고 한다. 이후 기념한 ‘성 니콜라우스 날’은 중세의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소년 사제들의 행사와 연결돼 어린이 축제 날의 성격이 강했다는데 그 영향인지 19세기 초에 와서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미지가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된 전설 같은 산타가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편이다. 또 어느 책에서는 산타클로스가 하룻밤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선물을 주려면 1초에 무려 1,434가구를 방문해야 한다며 과학적으로 산타의 허구성을 풀어놓은 이야기도 읽은 적이 있다.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어찌됐건, 산타의 행적이 과학적으로 말이 되건 안되건, 아이들은 일년 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울지 않아야 크리스마스 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많이 가져다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다 어느 날 철석같이 믿었던 산타클로스가 단지 동화 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부터는 꿈을 뒤로하고 조금씩 어른이 돼간다. 그렇게 성인이 돼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면 어린 시절의 동화를 떠올리며 아이들을 위해 그때 믿었던 산타의 기적을 재현해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지금 열한살인 아들아이는 아홉살까지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었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아이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부탁했다는 얘기를 하고는 했고 아이의 산타인 나는 몰래 그 선물을 준비해 머리맡에 놓아주면 됐다. 그러던 아이가 지난해부터 의심을 품기 시작했나 보다. 또래끼리 모여 그건 부모님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둥 자기는 밤에 자는 척하며 몰래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가는 아버지를 봤다는 둥 한마디씩 하는 과정도 겪었으리라. 지난해 12월 어느 날 아이는 스스로 생각해낸 꾀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한테 어떤 선물 달라고 기도했어요. 만약 그걸 가져다주시면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것이고 아니면 엄마 아빠가 거짓말하신 거예요.” 순간 내가 어릴 때 12월24일 밤마다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시는 걸 확인하고야 말겠다고 안 자고 버티다 끝내는 잠들고 말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래?” 하면서 별 관심 없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조금 고민이 됐다. 뭐 평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사다놓고 편지를 쓰면 되겠지. ‘…네가 기도한 그것도 좋겠지만 이게 더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산타의 글씨체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크리스마스이브가 됐다. 퇴근 시간이 돼서 아이에게 전화해 무슨 선물을 사가면 좋겠냐고 물었다. 갑자기 아이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아빠, 비밀인데요. 00게임팩은 산타 할아버지한테 부탁했으니까 그건 사오지 마세요.” 하는 것이다. 영악한 척해도 아직은 순진한 아이였다. 물론 그날 나는 무사히 산타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지난해는 그렇게 위기(?)를 넘겼지만 올해는 올 것이 온 것 같은 예감이다. 아이는 일년 새 부쩍 커버린 키만큼이나 더 능글능글해진 말투로 “다 알아요. 산타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요. 어른들이 만들어낸 애기죠, 그렇죠?” 하면서도 약간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는 분위기다. 그래, 그렇게 조금씩 너도 어른이 돼가는구나. 그래도 아이에게 가능한 한 산타의 기적을 한해라도 연장시켜주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아이와 머리싸움을 하며 산타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Very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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