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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선물입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에로스의 종말' 출간을 기념해 5일 서울 종로구의 한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사회에 들어서 타자가 없어지면서 자기 자신 또한 사라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교수는 현대인에게 타자는 자신을 사랑해주고 나를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페이스북에서 '좋아요'처럼 자기 확신을 가져다주는 거울이나 성적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보고 있다.
타자가 사라지다 보니 현대인은 자기 속에 몰입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자기 자신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본인을 찍는 '셀카'나 자해는 모두 공허한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런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밖에서는 셀카를 찍고 집에 들어가서는 자해를 하는 변태적 사회로 변하게 됐다"며 "자기 자신을 찍거나 직접 손목을 그어 피를 흘리는 행위로 자기를 느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자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사랑을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 교수는 "우리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사랑을 '경영'한다"며 "사랑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이익을 분산해 절대적 손실이 없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고려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독일로 건너가 전공을 바꿔 철학, 독일 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하는 독특한 길을 걸었다. 지난 2010년 발간한 '피로사회'와 2년 뒤 낸 '투명사회'는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피로사회'는 2012년 한국에도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도 유명한 한 교수는 시리아 난민 문제에 소극적인 한국 사회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 언론을 보면 시리아 문제를 거의 쓰지 않고 다루더라도 남의 일로 여기는 듯하다"며 "그러나 시리아 난민 문제는 글로벌 자본주의·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여기에 동참하는 한국 또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리아 또는 아프리카 난민의 고통과 가난에 대한 책임은 한국도 당연히 져야 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만큼 시야를 세계적으로 넓히고 세계 사회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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