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광화문의 '덕수제과'는 꿈의 공간이었다. 근처에서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니던 형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어머니가 시켜주신 빵을 먹을 때는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달콤한 '소보로'와 단팥빵, 부드러운 크림빵은 짜장면 다음으로 좋아하던 먹거리였다. 어쩌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빵이라도 사오시면 하나라도 더 먹겠다며 형·누나와 함께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여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카페에 밀려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다.
빵집은 1960∼1970년대 학창시절을 지낸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낭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카페 같은 곳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지만 당시만 해도 중·고등학생들이 다방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기껏 간다고 해야 빵집이 고작. 그래서 서울 서초동의 뉴욕제과, 삼선교의 나폴레옹과자점, 장충동의 태극당 등은 그 시대 청춘들에게 성지(聖地)로 통했다. 제과점 안에서 테이블 위 접시에 산처럼 빵을 쌓아놓고 서로 눈을 마주하거나 서너 명씩 짝을 지어 즉석 만남을 하는 젊은 남녀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1976년 개봉한 당대 최고의 하이틴 영화 '고교 얄개' 등 얄개 시리즈에서 빵집 데이트 장면이 유독 많았던 이유다. 그러니 수많은 이 땅의 50~60대가 빵집을 볼 때마다 당시 유행하던 청춘소설과 드라마를 떠올리며 애잔함에 젖을 밖에.
서울에서 오래된 빵집 중 한 곳인 태극당이 5개월간의 내부 리모델링 작업을 끝내고 오는 11일 재개장한다고 한다. 약간 무뚝뚝하고 촌스러운 느낌이었던 태극당의 모습이 혹시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예전의 향수를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된다. 옛날 먹었던 고소하고 달콤한 '양갱'의 맛과 한때 대한민국이 들썩였던 '모나카' 아이스크림의 시원함도 아직 여전한지…. 더 늦기 전에 세월의 빵집을 찾아가봐야겠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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