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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51> 新전국시대? 제자백가는 어디에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 드라마 속 정도전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추진하는 능력이 돋보인 대목이다. /사진=SBS




‘바야흐로 지금은 전국(戰國)의 세기와 같으니…’ 15세기 일본의 문인(文人)이자 귀족이었던 이치조 가네요시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동란을 한탄하며 그 혼란상을 일기에 낱낱이 써서 남겼다. 그 이후로 역사가들은 일본이 16세기께 통일될 때까지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이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전국시대의 원형은 기원전 403~221년 중국에서 진, 초, 연, 제, 한, 위, 조 7나라 간의 갈등과 협력이 반복되던 시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각 나라들은 기업과도 같아 서로 합종(合從)하고 연횡(連衡)했으며, 저마다 국가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대책을 세웠다. 그 과정에 공헌한 사람들이 바로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인간과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민중을 잘 살게 만드는 법, 군사를 강력하게 훈련시키는 법, 외교를 통해 가치를 획득하는 방법 등에 대해 군주들에게 강의를 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맹자나 한비자 같은 이들도 자신들의 국정 비전을 연습하고 실행하기 위해 각 나라를 돌아다녔던 유세가(遊說家)들이었다. 이 시기엔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신분 간의 차이가 모호했다. 노예 출신의 재상, 상인 출신의 법무장관 등이 국정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면 누구든 정책이나 전쟁을 통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뜻이 맞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에게 몸을 의탁해 천하통일의 거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작년 말부터 가속화된 야권의 분열, 그리고 여권의 공천권 갈등을 보고 있자면 2,000년도 넘는 오랜 과거의 중국 전국시대가 오버랩 된다. 무엇보다 각 정당 간의 영입전과 프레임 전쟁에 불이 붙으면서 과거의 가치나 철학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조직에 몸을 의탁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저마다 자신을 품어주지 못했던 기성 정당의 한계를 지적하며 ‘진짜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뜨거운 고백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시대 때 여러 인재들이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한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인적 자본 이동인 셈이다. 좋게 보면 다양성과 창의성이지만, 나쁘게 보면 소신을 저버리고 소속을 바꾸는 태도다. 앞으로도 이런 복잡한 상황이 쭉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라 이념 정당이 그 수명을 다하고 있는 듯한 조짐도 보인다. 20세기적 이념 갈등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한국 특유의 정당 정치 체제가 더 이상 21세기의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는 징후들 역시 여럿 발견되고 있다. 다양화된 국민들의 의견,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 각 산업마다 다른 풍토 같은 것 말이다. 오래된 중앙집권제식 관료제, 양당 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한 의회정치로는 이런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기 어렵다.



물론 체제의 변화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수렴 지점에 이르기까지 긴 갈등과 긴장의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시대가 수백 년 이어졌던 것처럼.

다만 이 혼돈 속에서도 우리 정치인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에서 사람이 빠진다면 그 어떤 정당도, 파벌도, 지도자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젠 부디 주판알 말고 가슴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나오길 바란다. 가슴에 뜨거운 뜻을 품은 정치 신인들이 등장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를, 이 순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망한다면 무리일까. 제자백가까진 불가능하다면 ‘제자십가’라도 좋다. 눈앞에 닥친 정치적 이벤트를 위한 쇼가 아니라 소신이 담긴, 뜨거운 가슴으로 이야기하는 인물의 등장을 간절히 원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은 간단하다.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속 정도전의 대사다. 사실 대사보다 내 눈에 띈 건 그의 태도였다.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고 추진하는 능력까지, 드라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은 아니길 기대해 본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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