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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차이나 딜레마

中 경제성장 특수 누려온 한국… 양국 관계 악화에 충격파 우려

지혜와 결단으로 상황 주도… 위기 극복 리더십 발휘 절실


"왕이 남의 신하가 됐으면 모름지기 짐과 덕을 같이 베풀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말갈을 못 견디게 괴롭히고 거란을 금고(禁錮)시켰다. 왕이 만일 마음을 고쳐먹고 행실을 바꾸면 좋은 신하가 될 터인데 왜 쓸데없는 고생을 하는가. 요수가 넓다 한들 장강보다 넓은가. 순순히 타이르니 왕이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바란다." 중국 수나라가 중원대륙을 통일한 뒤 고구려 영양왕에게 보낸 국서의 한 구절이다.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고구려를 굴복시키겠다며 대놓고 협박한 셈이다. 이에 영양왕이 중신회의를 소집했더니 '오만무례한 글에는 붓으로 화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화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른바 고구려와 수나라의 네 차례에 걸친 전쟁의 서막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는 새로운 강대국인 수나라의 등장으로 요동쳤지만 고구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남조 진왕조와 양면 외교를 펼칠 만큼 나름의 국력을 갖추고 있었던 덕택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뒤숭숭한 분위기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 번째 핵 실험 이후 불과 1개월 만에 광명성 4호를 발사한 탓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아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방조했다는 이른바 '중국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면서도 당사국들의 대화와 타협만 고집하는 바람에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곧바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배치를 들고 나왔고 이는 한반도에 새로운 냉전 시대를 몰고 올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서울이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중한 간 신뢰가 엄중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로서는 과거 수나라에 위협받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다.

중국은 그러잖아도 우리 경제에 최대 딜레마로 작용해왔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우리에게는 기회이자 위기로 닥쳐왔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의 25%를 중국에 의존해온 한국은 그동안 누구 못지않게 중국 특수를 만끽해왔지만 이제는 거꾸로 중국 탓에 경제 전반이 휘청거리는 지경에 내몰리게 됐다. 기회와 위기가 항상 붙어 다니는 차이나 딜레마의 속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차이나 딜레마'가 이제는 정치·외교 분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마음을 사겠다며 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톈안먼 망루에 올랐지만 돌아온 것은 중국의 차가운 반응뿐이었다. 중국을 움직여 북의 핵 포기를 유도하겠다던 야심 찬 구상도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중국은 미국에 맞서 북한이라는 완충지대를 지켜야만 하는 입장인데도 우리만 짝사랑해온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결국 한국만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00년에 한국이 중국산 마늘 관세를 인상했다는 이유로 한국산 휴대폰 수입을 중단했던 전력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협상 끝에 결국 중국산 마늘을 무제한으로 수입해야만 했다. 지금도 치욕으로 여겨지는 한국 외교의 완패였다.



앞으로 우리가 차이나 딜레마를 극복하자면 치러야 할 대가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혼란과 고통스러운 시행착오도 불가피할 것이다. 중국발 충격파를 고스란히 받아내기에는 우리의 체력이 아직 부족한 탓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반도는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국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항상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병자호란을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강대국에 휘둘리지 말고 상황을 주도해나가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단순한 정권 차원의 안위가 아니라 진정 국민의 안녕과 한반도 평화를 지키겠다는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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