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좋고 깨끗한 대형 마트도 있지만, 저렴하고 물건 좋은 재래시장도 있다. 세련된 진열도 없고 좁은 통로에 불편하지만, 이곳만의 맛에 빠져 즐겨 찾는 이도 많다.
공연 시장에서 ‘브로드웨이’가 대형 마트라면, ‘작은 브로드웨이’라고 불리는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오프-오프 브로드웨이(off-off broadway)는 재래시장에 비유할 수 있다. 오프 브로드웨이는 미국 뉴욕의 대표적인 공연 중심가인 브로드웨이의 외곽에,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는 이보다 더 변두리에 들어선 500석 미만의 중소형 극장가다. 브로드웨이가 작품 개발부터 제작, 공연에 이르기까지 대형 상업자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완성된다면, 오프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올린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돈 덜 쓰고 스타 배우 없다고 그 작품이 별 볼 일 없는 것은 아니다. 신진작가의 신작을 주로 올리는 오프 브로드웨이의 비니어드 극장은 1994년 에드워드 올비의 연극 ‘키 큰 세 여자’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지난해 국립극단에서 박정자·손숙·김수연 주연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2013년 한국 초연한 뮤지컬 ‘애비뉴 큐’도 2003년 비니어드에서 선보인 토니상 작품상 수상작이고, 지난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뮤지컬상, 최우수 연출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뮤지컬 ‘펀 홈’ 역시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흥행에 성공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케이스다. 레즈비언 조앤이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후 급작스럽게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펀홈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으로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과감한 ‘실험 텃밭’이 없었다면 애초 이 작품이 공연의 메카에 서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밖에 ‘사이 좋은 두 남자가 자신의 아들·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벌이는 유쾌한 소동’을 그린 뮤지컬 ‘판타스틱스’는 1960~2002년 오프 브로드웨이의 설리반 스트리트 극장에서 42년간 1만 7,162회 공연했고,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 스릴러 연극 ‘퍼펙트 크라임’ 역시 1만 회 넘게 공연 중인 오프의 대표 흥행작이다.
한국 공연계에도 대형 마트와 재래시장이 공존하고 있다. 지리적인 개념보다는 ‘대형 제작사 작품’과 ‘대학로 소극장 공연’처럼 제작 주체가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이다. 무대든 캐스팅이든 돈 들인 만큼 때깔 좋은 작품에 끌릴 수도 있고, 소박하지만 실험적인 무대가 당길 수도 있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지만, 아직 국내 공연시장에선 전자(前者)로의 쏠림이 지나친 게 사실이다. 물론 대학로에서도 실망을 안겨주는 작품이 많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나 흡인력으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공연도 있다. 오프, 오프-오프 출신(?)의 속 꽉 찬 작품이 저마다의 명성으로 브로드웨이 전체를 살찌우듯 한국 공연시장에서도 소극장 신화, 실험 작의 발견이 이어지며 차별화된 콘텐츠의 텃밭이 될 필요가 있다. 좋은 작품, 그리고 이를 알아봐 주는 관객이 없으면 안 될 일. 여유 있게 대학로를 돌며 작지만 강한 연극·뮤지컬을 발굴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어도 좋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