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 간의 세기의 바둑 대결로 AI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알파고의 핵심 개발자이자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인 데미스 허사비스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 15세 체스 천재 소년이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하고 컴퓨터공학과 뇌과학이라는 융합적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딥마인드를 창업해 젊은 나이에 부를 거머쥐는 등 그의 폭넓은 삶의 궤적이 주된 관심사다. 이는 우리 사회가 허사비스 같은 창의적 융합 인재에 목말라 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이미 몇 해 전부터 국내 주요 기업들이 신입 직원 채용 시 다양한 학문적 소양을 중요한 선발 기준으로 내세워왔고 대학들 또한 여러 전공과 학문을 아우르는 융합 과정 개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 노력에도 창의적 융합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 이 시대는 왜 창의적 융합 인재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에 기반한 혁신에 있으며 이를 실현해내는 주체가 바로 창의적 융합 인재이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전문 지식의 바탕에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형성된다. 경영대학으로 유명한 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혁신의 성격을 점진적 개선에 따른 ‘실험적 혁신’과 창의적 통찰력에 기반한 ‘개념적 혁신’으로 나눈 바 있다. ‘한강의 기적’은 실험적 혁신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인도, 그리고 수많은 후발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실험적 혁신은 더 이상 우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미래 변화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융합 인재가 이끄는 개념적 혁신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융합 인재 육성과 이들이 재능을 만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는 창의적 융합 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구글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주도해 설립한 미국의 싱귤래리티대가 좋은 예다. 이 대학은 향후 10년간 10억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융합 인재 양성이라는 명확한 교육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교육 선진국 핀란드도 오는 2020년부터 기존 과목을 ‘4C(Communication, Creativity, Critical Thinking, Collaboration)’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창의와 비판적 시각에 기초한 소통과 협업’을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교육 현장도 세계적 추세와 보조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변화가 대학의 담 안에만 머문다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대학뿐 아니라 연구소와 기업들까지 경계를 허물고 적극적으로 인재 양성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의 인재가 융합적 사고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KIST는 몇 년 전부터 기존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융합연구체제를 구축·운영해왔다. 최근 KIST에서 개발해 3,300억원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혈액 이용 치매 진단 키트’는 뇌와 센서라는 상이한 분야의 연구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 결과이다. 연구자들의 생각과 사고의 확장은 인문·사회·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의 통섭으로 가능해진다. 이제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은 그 자체가 중요한 혁신 과정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KIST가 톰슨 로이터가 꼽은 ‘세계 최고 혁신적 정부연구기관 25개’ 중 6위로 선정된 밑거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십년수목백년수인(十年樹木百年樹人·10년을 내다보며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며 사람을 심는다)’이라는 말처럼 인재 양성은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순간에 모든 제도와 방식을 바꾼다고 갑자기 창의적 융합 인재를 키워낼 수는 없다. 큰 방향성을 갖고 우리 사회 모두가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지난 반세기의 기적을 이어갈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이 바로 융합 인재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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