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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대표 작가 구효서>소설 이란..고정관념에 훼방을 놓고 평생 나를 휘두르는 존재

<컬처 앤 라이프>

글 쓰는게 즐거웠던 소년

"책 거의 없어 독서 많이 못했지만

15년간 광대한 자연을 읽은게 힘"

'타락' '동주' 등 30년간 100편 써

이효석·황순원문학상 등 상복까지

다양한 실험 시도하는 작가로

첫 멜로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때'

아프리카 신화 배경 심오함 담아

"고약한 친구인 소설과 더 다퉈야

다음은 통영 무대 멜로 작품 구상"

22일 구효서 작가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권욱기자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기 싫어 수업 시간에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어떤 주제를 정해 놓고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곧잘 썼다. 그래서 작문 시간을 좋아했다. 숙제를 내주면 남들보다 10장 이상 많이 써서 제출했다. 이 시절 단편 소설도 썼다.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 가서는 시에 빠졌다. 보초를 서면서도 시 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문장 연습 수업을 들었고 담당 교수는 소설을 쓰라고 말했다. 그렇게 작가가 되기로 했다.

1987년 단편 ‘마디’로 등단한 후 30년 가까이 글을 써오고 있는 구효서(58) 작가의 이야기다. 그간 장편소설 ‘타락’ ‘동주’ ‘나가사키 파파’ ‘비밀의 문’ 등을 포함해 100편에 이르는 소설을 발표했다. 상복도 있어 이효석문학상·황순원문학상·대산문학상·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타락’ 이후 1년 6개월 만에 스무 번째 장편소설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를 낸 구효서 작가는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쓴 양이 많아요. 솔직히 말해 글을 쓰는 게 즐거운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한국 문단에서 다작을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 그에게 어린 시절을 물었다. 독서량이 왕성한 창작 비결의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학교에는 책이 거의 없었고 집에는 토정비결이라는 제목의 책만 있었다.”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지 않고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한편으로는 위안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 그는 “강화도에서 살던 15년 동안 책은 많이 못 읽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자연을 읽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15년 동안 살면서 읽었던 자연 덕분에 150년 써먹을 게 있다고 말하고는 한다”고 밝혔다.

물론 구 작가는 뒤늦게 책을 많이 읽었다. 소설을 쓰면서도 자신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주변에서 자신이 읽지 않은 책 이야기를 할 때는 주눅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책을 읽었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열등감이 있었던 구 작가는 치열하게 책을 읽었다.

20대 후반 노동해방문학·실천문학이 생기고 민중문학 작가들이 탄생할 때 구 작가는 새로운 흐름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자신이 몰랐던 세계가 다가오자 감당이 안 된 그는 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며 당시 흐름을 따라갔다.

구 작가는 “젊은 친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이유로 등단작에서 광주이야기를 다뤘다”고 말했다. 그렇게 1980년대에는 실천문학을 1990년에는 개인주의를 다룬 문학을 쫓아가다 1990년 중후반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자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2일 구효서 작가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권욱기자


그렇게 흐름에 쫓기지 않고 자신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구 작가는 ‘누구보다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전위적인 형식실험을 보이며 소설만으로 존재하는 전업작가’라는 평을 듣기 시작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작가정신은 그대로 드러난다. 구 작가는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를 그의 첫 멜로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주인공의 기억상실·안면성형·삼각관계 등 가장 대표적인 멜로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다. 간단하게 내용을 요약하면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한 여자와 두 남녀 사이에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의 변주곡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퇴락과 타락이 낙원과 구원일 수 있다는 내용의 지난 작품 ‘타락’이 너무 실험적이어서 독자들로부터 이질감이 느껴진다는 평을 들은 구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는 쉽게 쓰기 위해 노력한 것일까.

이런 생각으로 책을 열지만, 읽다 보면 일반 멜로가 아니다. 구성은 낯설고 내용은 간단하지 않다. 일반 멜로 소설이 절정으로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끊임없이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내용은 깊디깊다. 과거 애인이었던 남자가 자신과 가장 친한 동생과 사귀게 된 것을 알게 된 수,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엘린과 남자 친구 리. 이들은 지금의 이 긴장감이 유지되기를 바라며 아프리카 신화이자 소원이 이뤄지는 장소인 ‘은라의 눈’에서 소원을 빈다. 그러나 이후 이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들 셋이 진심으로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구 작가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 소원을 빌었는데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며 “과연 이들이 진심으로 바란 것이 무엇일까, 파국은 과연 이들이 바란 것인가 아닌가 라는 두 질문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단편을 통해 이미 우리가 감각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주제로 글을 써 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이 문제에 천착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이들 주인공이 바란 것이 이들 진심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인간은 자기 진심도 모르고 진심으로부터 배반도 당할 수 있고 진심을 착각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설마 했지만 역시나였다. ‘타락’ 이후 주눅(?)이 들만도 했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구 작가는 “타락은 아주 심하게 쓰다 보니까 독자들이 꿈쩍도 안 했다”면서 “그래서 많이 양보했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인내를 갖고 읽으면 다른 맛이 날지 모르는 그 맛을 독자들이 느낄지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실험을 하며 30년 가까이 소설을 써 온 구 작가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는 “소설은 평생 나를 휘두르는 존재다. 싸워서 이길 수 없고 끝없이 굴복해야 하고 그의 행패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며 “이런 생각을 하면 한편 비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편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소설을 싸워서 이길 수 없는 대상이라고 말하지만 소설에 지는 것만은 아니다. 소설의 역할이 단순히 교양을 함양하고 흥미를 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소설의 역할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소설은 상처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구 작가는 상처가 무엇인지에 대해 쓰려고 한다. 그는 “천편일률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져 기존 생각에 훼방을 놓는 것이 내 소설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전업작가답게 구 작가는 벌써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프리카가 아닌 통영을 배경으로 남자 둘, 여자 한 명이 나오는 한국적 멜로를 그려보고 싶단다. 꿈에서조차 소설의 소재를 찾는 구 작가는 앞으로도 소설과의 동거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그는 “소설은 자나 깨나 나를 힘들게 하는 매우 고약한 친구지만 그런 친구가 밉지가 않다”며 “좀 더 소설과 다퉈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오래 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사진=권욱기자ukkwon@sedaily.com







△1957년 인천 강화도 출생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 ‘마디’로 등단

■주요 작품

노을은 다시 뜨는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별명의 달인, 늪을 건너는 법, 낯선 여름, 라디오 라디오, 남자의 서쪽, 악당 임꺽정, 비밀의 문, 나가사키 파파, 랩소디 인 베를린, 동주, 타락 등

■수상 내역

△1994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로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5년 ‘소금가마니’로 이효석문학상 수상 △2006년 ‘명두’로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7년 ‘시계가 걸렸던 자리’로 한무숙문학상 수상 △2007년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으로 허균문학작가상 수상 △2008년 ‘나가사키 파파’로 대산문학상 수상 △2014년 ‘별명의 달인’으로 동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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