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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천지도,손유여보부족 (天之道, 損有餘補不足)

하늘의 도는 남는 곳에서 덜어내 모자란 곳을 보태주는 것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아무리 건강에 조심하고 운동을 착실히 한다고 해도 사람은 갑자기 아플 수 있다. 서울의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으면 응급 환자는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다. 먼저 온 응급 환자가 줄을 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응급 환자는 저절로 급하지 않은 보통 환자가 돼버린다. 반면 서울을 벗어나 중소도시로 가면 응급실 사정이 달라진다. 찾는 사람이 없으니 응급실은 만성적인 운영난에 시달리다가 정부 지원금이 줄어들면 자연히 문을 닫게 된다. 이렇게 지난 5년간 중소도시의 응급실 47개소가 문을 닫았다. 인천 강화도의 경우 하나뿐인 응급실이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 따라서 중소도시의 경우 응급실 사정이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응급 상황에 빠져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시설과 사람이 적재적소에 골고루 있지 않고 쏠려 있는 곳이 있는 반면 모자라는 곳이 있는 불균형 상태를 보이는 사례가 많다. 수도권 대학에는 학생이 넘치는 반면 지역 대학에는 학생이 부족해 교수가 학생 모집을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한 대학 안에서도 인문계 학생은 나날이 줄어드는 반면 취업에 유리한 이공계는 학생이 비교적 많이 몰린다. 보수와 사회적 대접이 좋은 대기업에는 구직난이 생기는 반면 대우가 상대적으로 처지는 중소기업에서는 구인난이 일어난다. 소득 상위 10% 내의 자산은 나날이 증대하고 평균 수명도 늘어나는 반면 하위 10%의 자산은 나날이 줄고 평균 수명도 줄어든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학업·취업·소득 등 많은 분야에서 균형보다 불균형의 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3015A23 고전




노자는 자본주의 아래 살지 않았지만 전국시대에 나타난 불균형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다. 노자는 활을 쏘는 기량에 주목했다. 활시위가 너무 높으면 살짝 낮추고 너무 낮으면 조금 올리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활시위를 당기는 데 애를 쓴다 하더라도 과녁에 맞출 수가 없다. 이에 용기를 얻어 노자는 사회 전 영역에 고루 퍼진 불균형을 바로잡는 원칙을 제시했다. “하늘의 길은 남는 곳에서 덜어내고 모자라는 곳을 보태준다(천지도·天之道, 손유여이보부족·損有餘而補不足).” 어떤 지역에 흉년이 들어도 다른 지역에는 풍년이 든다. 두 지역을 섞으면 흉년과 풍년이 상쇄된다. 특정 지역에 소금이 나고 다른 지역에 곡식이 나니 두 지역 산물을 교환하면 모두가 만족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의 길대로 살아가면 사회는 늘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노자는 “사람의 길이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자라는 곳에서 덜어내 이미 남는 곳에 보태주고 있기 때문이다(인지도즉불연·人之道則不然, 손부족이봉유여·損不足以奉有餘).” 사람이 자연의 길과 반대로 살아가니 사회는 균형보다 불균형이 더 심화한다. 즉 모자라는 곳은 더 모자라고 남는 곳은 더 남게 되는 것이다. ‘손부족봉유여’는 오늘날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부익부빈익빈과 비슷한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서울과 중소도시의 응급실도 사정은 지금 노자의 말에 따르면 자연의 길이 아니라 사람의 길에 가깝다. 중소도시는 응급실이 줄어들어 없어지고 서울은 응급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응급실의 경우 서울 사람과 중소도시 사람 모두 고통을 겪는다. 서울 사람은 응급실이 많다고 해도 찾는 사람이 그보다 더 많으니 응급 환자 대우를 받지 못하고 중소도시 사람은 응급실이 적거나 없으니 급한 경우 참으로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노자의 제안대로 ‘손유여보부족’이라는 자연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고 일시적으로 그냥 넘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불균형이 오래가면 이번 선거에서 보이듯 국민들이 직접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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