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정국은 요동쳤다. 대표적인 것이 이해 12월 노동법 파문이었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바로 직전 해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 안기부법 등 11개 법안을 26일 새벽 소속 의원만이 참여한 기립 표결에서 불과 7분 만에 기습 처리했다. 이 법안 처리가 ‘날치기 통과’로 규정되면서 야당의 격렬한 반발과 함께 다음 해 봄까지 이어진 노동계의 총파업 등으로 정치적 혼란이 거듭됐다. 이런 와중에 한국 경제는 1997년 초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이어진 주요 그룹의 연쇄 부도에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치닫게 된다.
해묵은 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20년 만에 형성된 3당 체제의 우리 정치와 한국 사회가 그때와 너무 비슷한 행로로 치닫는다는 느낌 때문이다. 4월 총선으로 형성된 신(新)3당 체제는 과거보다 더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원내 1당의 지위를 야당인 더민주가 가져간데다 15대 때와 달리 아무리 해도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벗어날 수 없는 국면이다. 국회 의석 분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앞으로 어떤 정책 추진에서도 두 야당의 간섭을 사사건건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총선 후 정치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협치(協治)’다. 내년 대선까지는 정치 논쟁과 별개로 반드시 해야 할 정책과 입법에 대해서는 상호 협조해 갈등과 혼란은 그나마 최소화해보자는 취지다.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에서 먼저 제기했지만 야당도 협조할 것은 하겠다는 ‘조건부’ 형태로 동의하고 있다. 당장 4월 총선 한 달 만인 13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박 대통령과 3당의 원내지도부 회동에서 주요 의제는 협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협치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야권이 ‘총선 민심’을 근거로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인데다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다음 큰 선거인 내년 대통령선거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껏 고무된 야권에서는 서로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되겠다고 차별화 전략에 나서면서 ‘대선 마케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 선거에서 그나마 있던 대선 주자급 인사들이 줄줄이 낙선한데다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의 당내 갈등 수습 방안 마련에서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결국 여야 모두 겉으로는 협치에 동의하고 있지만 정작 입법이나 정책의 미세한 부분에 들어가면 내년 대선을 의식해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중심제의 우리 정치에서 3당 체제는 어쩔 수 없는 과도기적 형태다. 실제로 20년 전 3당 체제도 다음 해 대선에서 김대중·김종필(DJP) 연대로 사실상 양당 시스템으로 곧바로 회귀한다. 40만표 차이로 15대 대선에서 승리한 DJP연대가 공동 정부로 집권하면서 유지되던 형식상의 3당 체제도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참패하고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면서 사라지게 된다.
문제는 20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는 경기 침체에다 구조조정의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 3당이 실험하고 있는 협치가 실패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jhohn@sedaily.com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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