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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유대인 구하기…솔로몬 작전





상상해보자. 3,000여년 전에 이 땅을 떠났던 동족이 있다. 이역만리 떨어져서도 민족의 정체성과 풍속을 잃지 않고 조상의 땅에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세월을 버텼다. 그런 종족이 존재할까.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그랬다. 이스라엘 국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검은 유대인’들을 사지에서 구해냈다.

1991년 5월24일 오후 4시45분, 세계의 이목이 텔아비브 공항에 쏠렸다. 에티오피아에서 긴급 대피한 ‘검은 유대인’들의 첫 도착 때문이다. 호기심은 곧 경탄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기다려 온 세월이 관심을 끌었다. ‘잃어버린 단(Dan) 지파의 후손이라면 3,700여년, 솔로몬과 시바 여왕이 낳은 아들의 후손이라면 2,900여년 만의 귀향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유대인들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세기 중후반. 영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다. 검은 유대인을 찾아낸 선교사들은 경악했다. 안식일을 비롯해 히브리 성서의 각종 금기와 고대 유대교 신앙을 온전히 지키고 있다니! 소식을 접한 유대인 학자 조셉 힐러리가 이들을 찾아가 같은 민족이라고 밝혔을 때 반응. ‘세상에나! 백인종이 어떻게 유대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오?!’

예루살렘 이야기를 들려주니 이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에티오피아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의 견제와 박해 속에서 주로 산악지대에 살며 자신들을 ‘마지막 유대인’이라 여겼던 종족. 언젠가는 구약에 나온 대로 조상의 땅, 예루살렘으로 귀향하리라는 ‘약속’을 3,000여년간 믿었던 종족은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몇 세대를 더 기다려야 했다.

가장 먼저 이스라엘로 돌아간 시기는 1984년 11월. 에티오피아에 기근이 들자 이스라엘은 한 달 보름 동안 ‘모세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검은 유대인 8,000여명을 구해냈다. 1985년에도 수단의 내전이 격화하며 에티오피아 국경지대의 유대인 촌락이 전멸 위기에 빠졌을 때 494명을 항공편으로 빼냈다. 검은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소개한 경험이 있었어도 1991년의 상황은 급박했다.

에티오피아 내전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아디스아바바의 이스라엘 대사관은 우선 ‘동족’을 한데 모았다. 대사관저 부근은 곧 거대한 난민 캠프로 변했다. 이스라엘은 에티오피아 정부와 협상 끝에 몸값 3,500만 달러를 주고 이들을 이스라엘로 데려간다는 협약을 맺었다. 몸값은 미국 유대인 자선단체가 단 3일 만에 걷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반군 측과도 교섭해 검은 유대인의 송환작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언약을 받아낸 뒤 명령을 내렸다. ‘솔로몬 작전 개시!’

먼저 이스라엘군 정예 병력 200명이 대사관 부근 난민 캠프와 공항까지 6.4㎞ 구간의 안전을 확보했다. 솔로몬 작전은 전광석화처럼 펼쳐졌다. 이스라엘이 동원한 비행기는 군의 C-130 수송기와 B-747 점보 제트기 35대. 많을 때에는 28대가 동시에 하늘에 떠 있을 정도로 36시간 동안 사력을 다한 끝에 구조한 인원이 1만4,325명. 세계 항공 역사상 이렇게 단기간에 이 정도 인원을 수송한 유례가 없다. *



진기록은 이 뿐 아니다. 기네스북에는 가장 많은 수송인원을 기록한 시기와 항공사가 ‘1991년 5월 24일 엘알(El Al·이스라엘 국영항공사) 1,088명‘이라고 나온다. 이스라엘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760명 이상을 태울 수 없다‘는 보잉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실을 수 있는 만큼 실었다. 실제 탑승 인원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보다 많았다고 한다. **

솔로몬 작전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모두가 돌아온다‘는 모세의 예언이 실현됐다는 기쁨과 자신감을 안겨줬다. ’검은 엑소더스‘ 이후 태어난 2세를 포함해 13만 5,000명으로 불어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인구 증가정책에 도움이 됐지만 가난과 유무형의 차별 논란을 낳고 있다. 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가끔 일어난다. 자동소총과 선민사상으로 무장한 검은 유대인 병사와 경찰이 팔레스타인에 유독 가혹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작전 이후에도 검은 유대인들을 모셔왔으나 심혈을 기울이는 인구정책은 따로 있다. 유럽 출신 백인 유대인의 유치가 최대 목표.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 및 증대 노력에 힘입어 1960년대까지 90%를 기록하다 1990년대 초반 70% 아래로 떨어졌던 전체 인구 대비 유대인 비중은 74% 수준까지 올랐지만 지속 여부는 불투명하다. 아랍계의 출산율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처음의 상상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에게 잃어버린 부족이 있다면 구해올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가난한 동족을 대해온 행태를 보건대 불가능할 것 같다. 인구 절벽에 봉착한 지금 발등의 과제가 아닐 수 없건만 현실은 답답하기 그지 없다. 통일대박론부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까지 말의 성찬 뿐이다. 잃어버린 부족을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기회를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솔로몬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어도 남은 사람들이 있다. 현지에서 탈출 작전을 주관한 아셰르 나임 대사와 직원들은 마지막 비행기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아디스아바바에 남았다. 귀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이스라엘로 돌아갈 기회를 놓친 ‘검은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서다. 나임 대사는 반군의 포탄이 대사관에 떨어지는 순간에도 검은 유대인들과 함께 자고 먹었다. 새 정부를 구성한 반군과 협상을 벌여 미처 떠나지 못한 동족을 최대한 구한 후에야 나임 대사는 돌아왔다. 리비아 출신인 아셰르 나임 대사는 1993~1994년 한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뒤 귀국, 검은 유대인의 대학 교육을 지원하는 장학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검은 유대인 구출을 기록한 ‘잃어버린 부족 구하기’를 남겼다.

* 엄마 치마 속에 숨었던 어린이 33명과 기내에서 태어난 2명을 합치면 1,122명이 내렸다고. 최신형 점보기(B-747 8I)의 최다 탑승인원이 605명, 에어버스 A380-800이 868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좀처럼 깨지기 힘든 탑승기록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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